[최영실의 소소살롱] 대학로 12길 46 학전블루 소극장
[최영실의 소소살롱] 대학로 12길 46 학전블루 소극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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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옛 노래들은 장르를 불문하고 들으면 짠할까’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의 노래라서 그런가 싶었지만 정작 부르는 이들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모여 함께할 수 있으니 행복한 시간이라고. 공연의 마지막 앙코르곡까지 관객과 가수, 모두는 즐거웠다. 그가 이곳을 떠나 자신의 행성으로 간 지 28년, 꽤 오랜 시간도 흘렀다.

대구 영남대학교 천마아트센터에서 ‘김광석 다시 부르기’ 콘서트가 있었다. 공연 시간에 맞춰 도착해 차를 세우고 내리니 각 지역에서 온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주황색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말로만 듣던 팬 부대다. 박학기, 장필순, 유리상자, 동물원…. 오늘 공연의 가수들을 되짚어 보지만 딱히 그 많은 팬을 몰고 다닐 팀이 없는데, 알고 보니 모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박창근이라는 가수가 그들의 주인공이었다. 덕분에 쓸쓸할 뻔했던 공연장 객석도 가득 찼다.

밴드 연주에 포크송 가요 공연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콘서트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 때문이었다. 유리상자의 팬인 친구가 함께 가자며 티켓을 선물해 준 것. 청춘 시절을 같이 보낸 가수들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은근히 기대되기도 했다.

그녀와 나는 대학 시절 공연을 보러 소극장이 많았던 대학로 혜화동을 누볐던 추억이 있다. 가본 지가 오래되어 그 거리가 궁금하기도 한데 이번에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올해로 33돌을 맞는 특별한 공간이었던 ‘학전블루’ 소극장이 경영난과 김민기 대표의 암 투병으로 운영을 지속할 수 없어 3월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민간 위탁으로 지원을 하겠다고 했지만 ‘학전’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하지 못해 우리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대중음악, 연극, 클래식,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공연을 선도해온 ‘학전’은 이름만으로도 시대 문화의 표상이다. 학전의 용사들이 이번 공연을 기획했다.

김광석에게도 학전은 무척 특별한 곳이었다. 무려 1천여 회 공연을 그곳에서 했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또 해?’였을까. 포스터로 광고를 하던 시대. 뜯고 난 자리에 다음 공연 포스터를 또 붙이면 보는 사람들이 “또 하냐”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한다.

이번 공연이 좀 내게 특별했던 점은 가수 박창근이 마치 김광석이 살아 돌아온 듯 음색까지 비슷해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는데 그의 별명 ‘또 해’를 이어받아 자신도 TV에서는 자주 볼 수 없지만 공연으로 만나겠다고 했다. 무명으로 긴 시간 꺾이지 않고 음악을 사랑해온 그는 이제껏 학전을 지킨 이번 공연 참가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학전 입구에 김광석의 노래비 부조가 있다. 새겨진 글귀를 옮겨본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잘못된 사실에도 익숙해져 버리려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이 제 노래를 듣고 한 번쯤 ‘아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제 노래 인생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고 봅니다. 행복하세요~>

돌아보면 상처고 타협하지 못하는 불화의 시간이 ‘청춘’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오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다만 우리는 각자의 소용돌이 속에 열렬히 ‘함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우리들의 옛 영웅 학전 용사들과 인사라도 나눌까 싶어 스텝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세준, 박학기, 박승화 차례로 나오는데 새로운 영웅 박창근을 보자 나의 몹쓸 가슴이 두근두근. 그가 아주 흔쾌히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김호중 콘서트 표 구하느라 발을 동동 구르던 K, 이승윤 콘서트로 함께 전국 투어를 하는 P, 적어도 사랑이라면 주고받는 미덕이 있어야지. 조건 없이 주기만 하는 사랑의 정체가 도대체 뭘까 어쩐지 공감할 수 없었는데, 돌아와 슬며시 박창근 콘서트 검색을 해본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속에 있다.

최영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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