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바람 피는 사람의 마음이란 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을 하듯 바람 피는 인간들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 바람을 핀다는 것. 다만 그 행복에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인 잣대가 드리워지면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 이 말인 즉은 들키지만 않으면 인생 제대로 살고 있는 셈이다.
바람 피는 인간들도 다 안다. 자신이 지금 옳지 못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거. 다만 삶의 목적과도 같은 행복을 거부할 수 없을 뿐. 원래 그렇다. 옳음은 좋음을 이길 수 없고, 즐겁지 않으면 악한 거다. 인간이니까. 언젠가는 이곳에서 사라질 테니까.
비록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극 중 정수(이학주)의 아내인 세연(김새벽)이 사무엘의 아내인 우진에게 말한다. “정수가 원래 성욕이 왕성해요.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은 꼭 했거든요. 내가 그 맛에 살았는데.” 그러자 우진이 말한다. “정수씨 그렇게 안 봤는데 좋은 사람이네요.” 맞다. 나를 즐겁게, 기쁘게 해주면 좋은 사람이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그러거나 말거나 유부남들 세계에선 이런 말이 있다. 가족끼리 나쁜 짓 하는 거 아니고, 장모님 딸은 건드리는 게 아니라고. 해서 허기짐을 못 견뎌 이미 남의 집 담장을 넘어버린 정수는 친구 사무엘에게 아내 몰래 만나는 여자친구가 있음을 고백하고, 그에게 이런 명언을 날린다. “사랑이 두 개일 수가 있어. 헌데 두 개까지야. 세 개부터는 사랑이 아니야.”
<그녀>라는 영화가 있다. 2014년작으로 그해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데 지루하고 외로운 일상에 찌든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인공지능 컴퓨터 운영시스템(OS)인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몸만 없을 뿐,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대화까지 가능한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된 것.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싶겠지만 사랑의 한 단면에는 ‘기대는 것’도 있고, 함께 일상을 공유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대화를 통해 위로해줄 수 있는 존재라면 충분히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사만다는 OS인 만큼 바람날 일도 없고.
아뿔싸! 헌데 그게 아니었다. 능력이 뛰어난 사만다는 스스로 진화를 통해 인터넷으로 연결된 수만 명과 동시에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고, 테오도르는 그 수만 명 중 하나였던 것. 그 사실을 알고 절망한 테오도르에게 사만다가 말한다. “난 당신 것이기도 하고, 당신 것이 아니기도 해요. 마음은 상자처럼 뭔가로 꽉 차는 게 아니예요. 크기가 늘어나기도 하죠. 새로운 사랑을 위해 말이죠.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한단 게 아니예요. 오히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어요.” 그렇다. 사랑의 속성이 기대고 소유하는 것이라면 사랑의 본질은 ‘넓혀가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보라. 누군가를 사랑하듯 모든 인간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는 인류로 가득 찬 지구를. 신(神)이 우리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궁극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사만다가 가르쳐 준 사랑으로 인해 테오도르는 자신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떠난 전처 캐서린(루니 마라)을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정수가 잘했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하는 사랑이란 것에 이런 모순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뿐. 아름다움이 꼭 옳지는 않다. 다들 좋음(행복)을 위해 살면서 옳음을 강요하고 강요받는게 모순된 세상의 모습이고, 그렇게 옳음과 좋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인간사 모든 비극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조선시대 화가인 신윤복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인도>에서 남녀 간의 각종 애정행각을 몰래 훔쳐본 뒤 그린 춘화도를 스승 김홍도(김영호)에게 들킨 윤복(김규리)은 왜 그런 그림들을 그렸냐고 묻는 스승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사랑하고 흔들리고 유혹하는 그 마음이 아름다워서..”
2024년 1월 19일 TVING 공개. 웹드라마 6부작.
이상길 취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