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 -7
[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 -7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22 20: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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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il49@naver.com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듯 보이는 빈집을 손으로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저 집은 사람이 살지 않은가 봐요?”

“아, 사율집말입니까?”

“사율집이라구요?”

“오래전에 저 집 텃밭에 있던 밤나무가 벼락에 맞았는데 그때 충격으로 밤나무가 쪼개지면서 파편이 튀어 때마침 텃밭에서 풀을 뽑고 있던 집주인의 목을 관통하게 되어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사람들이 저 집을 가리켜 사율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벼락보다 벼락이 칠 때 튄 파편이 더 위험하군요.”

“그렇지만 그런 일은 흔치 않잖아요.”

“파편을 맞게 된 집주인은 죽고 없는데 정작 벼락을 맞은 밤나무는 생명이 남아있어서 가지에서 움이 트고 있네요.”

“그러게요. 사람의 생명력보다 나무의 생명력이 더 강인한가 봐요.”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자연스럽게 고사리밭 쪽으로 올라갔다. 하긴 그 길 말고는 딱히 걸을 만한 길도 없긴 했다. 길이라고 해봤자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과 좁고

평평한 마을 길뿐이었다. 느릿느릿 걸었는데도 이십 분 정도 지나자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청색 카디건 소매를 한 뼘쯤 걷어 올리고 있었고 나 역시 분홍빛과 감색이

엇갈린 체크무늬 블라우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렸다. 마침내 고사리밭 한 모퉁이에 놓인 통나무를 발견했고 우리는 그 통나무에 걸터앉아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참, 우리 빵이나 같이 먹을래요?”

“웬 빵예요?”

“고향슈퍼에 들러 빵을 사 오던 길이었어요.”

내 눈길이 그의 손등에 가서 꽂혔다. 그의 손등에는 일회용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그 역시 내 눈길을 알아차렸던 모양이었다. 자신의 손목에 붙여놓은 일회용 테이프를 손으로 만지며 그가 말했다.

“아! 이거요. 그날 그쪽으로 달려가다 나무옹이에 ….”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찮아요. 지금은 다 나았어요.”

벙긋 웃고 나서 그가 빵 하나를 건네주었다.

“잘 먹겠습니다.”

“참, 그쪽은 이름이…….”

“진실, 최진실이에요.”

“이름이 참 괜찮은데요. 진실, 그것도 최고의 진실이라… 그쪽한테는 절대로 거짓은 없겠는데요. 하하하. 참, 제 이름은 수호. 손수호라고 합니다.”

“아, 네. 수호 씨.”

빵을 다 먹고 났을 때 엷은 미소를 띠며 그가 또 말했다.

“진실이, 그냥 우리 서로 말을 트는 게 어때?”

“좋을 대로요.”

“요라고 하면 말을 트는 게 아니지. 하하하.”

“아, 그러네. 호호호.”

“진실이, 이 크림빵 어때?”

“빵은 다 좋아해.”

“나랑 같군. 하하하.”

그날 우리는 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상당히 친해졌다. 그가 자신의 손에 묻어있던 빵가루를 털어내고 차분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외할머니께서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를 사랑으로 돌봐주셨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와는 정이 많이 들게 되었지. 내가 틈이 날 때마다 제일 먼저 이곳 외할머니댁에 내려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지. 이번에도 봄방학이라 내려오게 된 것이야.”

“아! 그랬구나.”

그날 그는 자신을 재수생이나 마찬가지인 대학생이라 소개했다. 대학에 입학은 했지만 본인이 원했던 영문학과에 가지 못해 재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그가 자신에 대해 소개하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능선을 반쯤 내려왔을 때 그가 물었다.

“참, 서울에서 사귄 친구들과는 연락은 하고 지내?”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어딜 가든 서로 안부 정도는 주고받을 만한 친구는 있을 거 아니야?”

“물론 있었지. 피아노 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와 글짓기반을 같이 다녔던…….”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많이 힘들었겠구나.”

나는 많이 힘들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괜찮다고 말할 수 도 없었다.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눈길을 먼 산 쪽으로 보냈다. 우리가 능선을 내려왔을 때는 이미 해가 서쪽 산허

리에 걸려 있었다. 봄방학 내내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언제부턴가 내 생활에서 그와 만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그 역시 내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외할머니와 보내는 시간보다 나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봄방학이 끝나는 전날에는 하루에 두 차례 만났다. 오전에는 냇가에 들어가서 손으로 송사리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었다. 오후에는 그와 내가 처음 만나게 되었던 골짜기를 따라 걸으며 머루와 다래를 따서 먹기도 했다. 다행히도 그 길은 오래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양지바른 언덕은 온통 진달래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여태 그곳에 진달래꽃이 그토록 흐드러지게 피어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산에 오를 때마다 진달래꽃은 보지 않고 고사리만 보았던 까닭이었다. 갑자기 그가 언덕으로 올라갔다. 나는 제법 큰 소리로 말했다.

“위험해!”

“뭐가?”

“언덕으로 올라가는 거.”

“괜찮아.”

그는 기어이 언덕으로 올라가더니 진달래꽃 한 송이를 꺾어 와서는 내게 건네주었다. 꽃송이를 받아 들고 내가 말했다.

“고마워.”

얼굴 가득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가 말했다.

“우리 꽃잎을 많이 잡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해.”

별안간 그가 점퍼 주머니에 들어있던 꽃잎을 한 움큼 집어 바람에 날렸다. 곧 그가 몸을 날려 땅에 닿을락 말락 하는 꽃잎을 움켜쥐고 나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이 승자임을 과시해 보였다. 나는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었으나 꽃잎은 하나도 잡지 못했다. 자신의 소원은 나랑 같이 손잡고 걷는 거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깔깔대며 도망을 쳤다. 별안간 그에게 손 잡힐 생각을 하니 느닷없이 체온이 오르는 듯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달려갔다. 숨을 헐떡거리며 따라오던 그가 말했다.

“이건 완전 반칙인데. 하하하.”

“호호호.”

즐거움은 고조되어 갔다. 우리에게 같이 있는 시간은 더없이 즐거웠다. 능선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뜬금없이 그가 시를 읊기 시작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시를 읊다 말고 그가 말했다.

“하필이면 이 시에 등장하는 영변이 바로 핵시설이 만들어진 곳이어서 지금은 진달래꽃이 피어나지도 않는다고 하더라고.”

▶8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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