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자의 발효 이야기 ⑦] 향토 발효음식의 진미, 포항 가자미식해
[이인자의 발효 이야기 ⑦] 향토 발효음식의 진미, 포항 가자미식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2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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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상설시장으로 문을 연 포항 죽도시장은 다양한 수산물을 중심으로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2천500여개 점포를 거느린 대형시장이다. 최근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대구, 경주, 울산은 물론 영덕, 울진의 상권까지 포괄하는 환(環) 동해안 유통의 거점시설로 성장하고 있다. 죽도시장에서는 포항물회, 과메기, 고래고기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 주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포항 가자미식해(食醯)는 외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아도 주민들에게는 인기 있는 발효 먹거리이다. 이 발효 먹거리에 사용되는 물가자미(기름가자미)는 가자미 종류의 하나로, 참가자미와는 모양이 다르며, 성장이 느려 양식이 어렵지만 비교적 즐겨 먹는 어종이다. 포항과 동해안 지역에서 풍부하게 잡히는 이 어종은 동해안 어민들에게는 친근한 생선이다. 특히 영덕 강구 앞바다 수심 200~300m의 모래 펄에서 많이 잡힌다. 따라서 엄밀하게 얘기하면 포항 가자미식해의 원산지는 포항이 아니고 영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자미식해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자미의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지느러미도 가위로 잘라준 다음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물기를 빼주고, 소쿠리에 널어 구덕하게 말린다. 말린 가자미는 사선으로 뼈를 꺾어 2cm 정도 크기로 썬다. 식해를 담기 위해 양념 재료로 메조(조)와 멥쌀로 밥을 찐 다음 충분히 식힌다. 천일염으로 간을 한 굵은 무채, 고춧가루, 파, 다진 마늘, 생강, 액젓을 넣고 버무려 양념을 만든다. 여기에 엿기름가루 또는 쌀누룩을 넣는다.

이들은 발효를 위한 방아쇠 역할을 한다. 엿기름을 너무 많이 넣으면 가자미가 물러지고 식해 맛이 달아서 상품성이 떨어진다. 최근에는 소금 대신 소금누룩을 사용하여 감칠맛을 높이고 발효의 속도를 더하기도 한다. 준비된 재료를 잘 버무려 항아리에 넣고 상온에서 2~3일 발효시키면 가자미식해가 완성된다.

발효가 마무리되면 새콤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나며 뼈가 삭아져 없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발효과정에서 가자미의 아미노산 맛과 전분(밥)이 내는 단맛, 그리고 각종 채소의 영양소가 결합하여 매력적인 맛을 낸다. 늦겨울 또는 2월이나 3월에 먹기 위해서 묻어둔 김치의 김치소에 넣어두었던 잘 삭은 갈치토막을 먹는 맛과 같다. 발효과정을 통해 생기는 유산균과 미생물들은 소화를 촉진하고 장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에 포항시장에서 판매하는 가자미식해에는 메조 밥 대신 멥쌀밥을 사용하는 추세이며, 메조 밥을 사용하는 것과의 맛의 차이는 찾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옛날에는 쌀이 귀하여 조를 대신 사용했으나 지금은 국내에서 메조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점이 원인으로 보인다.

어떤 이들은 멥쌀로 만든 가자미식해는 비주얼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실제로 멥쌀로 만든 식해가 더 부드럽고 맛있다는 평가도 있다. 식해의 재료로 가자미 외에 전어, 마른 명태, 갈치 등 다른 많은 식재료가 사용된다. 하지만 가자미는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해 아미노산 발효를 촉진하여 맛과 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다른 어종에 비해 식해 재료로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포항의 가자미식해는 향토의 귀중한 발효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알리고 전통을 이어가는 것은 우리의 식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므로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인자 <하늘밥상 소금누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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