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와 아사공덕
독수리와 아사공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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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카자흐족은 검독수리를 이용해 늑대를 잡는 사냥꾼을 ‘베르쿠치’라 부른다. 이들은 겨울이면 눈 덮인 해발 3천 미터, 영하 20도의 산으로 원정해 늑대와 여우, 토끼 등을 사냥한다. 이러한 기술은 아버지와 아들, 손자로 계승되고 가을 첫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사냥하러 떠난다. 눈 위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늑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독수리는 새끼 때부터 키워서 길들여 약 15년간 사냥을 시킨 뒤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늑대 사냥은 국가가 인정한 포수와 몰이꾼이 한팀을 이루어 매년 10월 15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4개월간 이어 간다.

티베트에는 독특한 ‘독수리 천장(天葬)’ 문화가 있다. 티베트와 무스탕 지역에서 행해지는 장례 의식으로, 주검을 독수리에게 먹이로 내어놓아 시신 처리를 맡기는 풍습이다. 그들은 서방정토라 일컫는 극락세계를 서쪽으로 십만 억 나유타의 거리에 있다고 말한다. 티베트에서는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새를 독수리라고 생각했다. 주검을 보시하며까지 독수리가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 그곳으로 인도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사냥하는 육식성 조류 ‘이글(eagle)’과 동물이나 사람의 사체를 먹이로 삼는 ‘벌처(vulture)’ 두 종류로 구분된다. 검독수리, 참수리, 물수리 등은 사냥을 하지만 콘도르, 이집트 독수리 등은 사냥을 하지 않는다. 사냥하는 독수리는 목은 짧고, 머리 부분의 털은 길며(長毛), 주로 피식자의 살점을 먹는다. 반면, 사체를 먹는 독수리는 몸통 깊숙이 목을 들이대는 탓에 목이 길고, 머리 부분의 털은 짧거나(短毛) 잘며, 아예 털이 없는 대머리도 있다.

이글과 달리 벌처는 겨울에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다. 겨울에는 북쪽 서식지에 눈이 쌓여 먹이를 구할 수 없으므로 남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철원, 파주 등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월동하지만, 먹이를 주면 경남 함안과 고성, 김해, 울산 등 남쪽까지 내려와 겨울을 난다. 경남 김해시의 ‘독수리 친구 되기 생태축제’, 고성군 고성읍 기월리 들녘의 ‘독수리 생태관광 체험 프로그램’, 경기도 파주의 ‘파주 독수리 식당’ 등은 이미 한발 앞선 독수리 먹이 주기 프로그램이다.

반면, 사냥하는 검독수리는 월동지로 이동하지 않는다. 먹이가 되는 늑대, 여우, 토끼가 겨우내 서식지를 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장의 독수리 역시 겨울에는 이동하지 않는다. 사람이 겨울에도 자연사하기 때문이다. 결국, 동물의 사체를 먹는 독수리만 겨우살이를 위해 이동하는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 모두 의식주에서 식(食)이 중심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회심곡(回心曲)에서 ‘배고픈 이에게 밥을 주어 아사공덕(餓死功德=굶어 죽기 직전에 이른 중생에게 음식을 베풀어 살리는 행위) 하였는가?’라고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에 울산시가 철새 관광을 위해 야심 차게 내놓은 ‘조류 사파리 추진계획’에는 △조류 사파리 명소 설치 △체험형과 체류형 탐조프로그램 운영 △철새 관광상품 홍보 사업이 들어간다. ‘조류 사파리 명소’는 가족이나 소규모 관광객이 언제라도 조류 사파리를 할 수 있도록 명촌교 하부, 태화강전망대, 삼호철새생태원 등 20곳에 설치한다. 또 ‘체험형과 체류형 탐조프로그램’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야생생물Ⅱ급인 ‘독수리 생태체험장’ 운영도 들어간다.

조류생태관광은 전문가의 축적된 자료를 바탕으로 시기와 선점 효과, 지속성과 독창성이 돋보일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울산 떼까마귀의 겨우살이는 독창적이며,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을 수 없다. 울산시의 ‘조류 사파리 추진계획’이 차질 없는 실행으로 아사공덕을 실천하는 성공 사례로 기록되기를 기원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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