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단일기] 가르치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
[ 교단일기] 가르치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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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과거에는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길 바랐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의미 있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순간순간이 행복하게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일반계 고교에 재직하던 시절, 야간 자율학습과 학원 생활에 찌든 학생들이 너무 안타까워 나와 함께 있는 수업 시간이라도, 우리 반 학생들이라도 행복하길 바라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아이들이 당면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이 순간을 보낼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했었다.

대체로 많은 것들이 효과가 있었지만,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내 노력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은 학교만 오면 종일 엎드려 자다가 유일하게 깨어있는 시간이 점심, 저녁 시간에 축구 하는 시간이었다. 그 녀석의 해맑게 뛰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점심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우리 반 친구들이 축구 하는 것을 하염없이 보기도 했다.

지금도 역시 내가 학생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그들이 ‘더불어 행복한 사람으로 바로 서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행복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합해져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가르침의 직접적 목적이 되긴 어렵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졸업 후에도 오래전 제자들과 연락이 닿아 얼굴을 볼 기회가 생길 때가 있다. 꾸준히 연락해 온 일도 있고, 우연히 만난 일도 있다. 예전에, 백화점에서 알바를 하는 제자가 인사를 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수업 시간에 한 말을 떠올렸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플라톤에 대해서 가르칠 생각을 하니 너무 설레서 어젯밤 잠을 못 잤어.’라고요. 그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라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말들을 학생들이 기억할 때가 있다.

예전에 우리 반이었던 학생이 스승의 날 손편지를 써왔는데 내가 했던 어떤 말들이 엄청 힘이 되었다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전혀 없어서 되레 ‘이렇게 멋진 말을 내가 했다고?’라고 생각했다. 물론 학생에게 간절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나의 마음과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그 학생의 의지가 만나 만들어진 말들일 것이다. 이것 외에도 한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글쓰기 활동을 할 때 기억에 남는 일들을 기록하게 했더니 작년 담임이었던 허인선 선생님과 여름방학에 함께한 석남사 계곡 물놀이가 재밌었다는 내용을 적어 그 담당 선생님께서 일부러 내게 알려주신 적도 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내 가르침의 목적은 아주 소박하게 바뀌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교사로서 했던 말들, 또는 우리가 함께했던 활동이 문득 기억나게 하는 것. 그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교실에 앉아있는 이 학생들이 10년, 20년이 흐른 어느 날, 회사의 직장 상사에게 깨지는 날도 있을 것이고, 남편 또는 아내랑 투덕거리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인생 참 쉽지 않네’라고 생각하면서….

거리를 걷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문득 올려다보며 ‘맞다. 그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지. 그때 그렇게 한 거 별거 아니었지만 참 재밌었는데….’라면서 잠시나마 웃어볼 수 있는 것. 그게 내 가르침의 목적이다. 삶이란 것이 어차피 외롭고 고달플 수밖에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행복했던 수많은 기억의 단편들로 삶을 지속해 나갈 힘을 얻는다. 내가, 나와 함께한 순간들이 그런 작은 기억의 조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보람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일들로 버거운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가르치는 이 학생들의 ‘지금’이 아니라 ‘20년 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르치는 내 자세가 달라진다. 오늘도 나는 미래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허인선 울산서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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