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아무개의 땅띔 이야기
김 아무개의 땅띔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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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2월 5일에 한 청소년이 가출했다. 손에는 중3 수학책 한 권뿐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대탈출을 꿈꾸어오다가 설을 쇤 지 사흘째가 되던 날에 마침내 감행했다.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만 꿇자던 동대산 나무꾼 생활이 2년이나 이어지자 땅띔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출을 선택한 것이다. 땅띔은 지게를 지고 일어날 때, 땅을 딛는 것처럼 힘차게 딛고 일어선다는 의미이다. <김 아무개의 땅띔 이야기> 책은 이렇게 시작되는데, 조금 더 살펴보자.

차표 끊을 돈이 없던 그에게 무임승차는 불가피했다. 호계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청량리역에 닿기까지 사흘 동안 갖은 고초를 겪었다. 물어물어 열 살 위의 형님이 사는 ‘한남동 산 4번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게딱지 같은 판자촌 전체가 같은 지번이었으니 서울 김서방 찾기처럼 대략 난감했다. 다행히 인심 좋은 사람을 만나 물지게 일을 시작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하다가 형님과 상봉하였다. 나뭇짐을 진 지게목발을 잠시 땅에 놓고 작대기를 세웠다고나 할까.

“그래 잘 왔다. 내가 안 그래도 너를 부르려 했다.” 극적으로 만난 형님의 첫 마디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실직 상태에서 신혼 단칸방에 사는 처지로서는 더욱 그렇다. 이 말은 먼 뒷날까지 그가 두고두고 고마움을 되씹게 한다. 입학금 융통이 안 되자 시골집으로 내려가서 장리쌀을 내어 마련하였다. 오산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교과서도, 교복도 없는 학생이었다. 신문 배달을 하는 등 고학을 하다시피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한 해 재수 끝에 서울사대 국문학과에 입학한다. 거의 입주 과외를 하면서 대학을 마치고 교단에 섰다. 동네 아는 형님의 가출 이야기인데, 중앙대 김경수 명예교수의 자서전 앞부분을 소략했다. 나는 6학년 겨울방학 때 형님을 처음 만나 중학교 입학시험을 대비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형님의 자당인 서촌댁은 인심이 후하여 아무나 들락거렸는데,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형님의 친척 중 예쁜 여학생이 방학 때마다 여러 날 묵곤 할 때면 더 자주 발걸음이 갔다.

형님은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경력이 쌓이면서 교수법에 탄력이 붙어서 실력 있는 교사로 평가받았다. 학원가에서조차 명성이 알려지자 러브콜이 왔고, 깊은 고민 끝에 14년여 교직 생활을 접었다. 1980년 3월부터 종로학원 일타강사의 길로 나섰고, 과외 교습도 병행했다. 천국 같은 그 시절도 잠시, 그해 7월 말에 정부는 모든 과외 금지령을 내리자 과외 수입이 사라진 것이었다. 더 난감한 일은 사기를 당하여 퇴직금을 날려 먹은 악재가 겹친 것이다.

이 무렵에는 돈이 한창 들어갈 때였다. 박사과정 등록에, 자녀들 양육비와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큰집 조카 등록금까지 고비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말 그대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이었으나 형님의 긍정에너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석사과정을 마쳐놓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대학 문호가 개방된 시기여서 여러 대학에 출강이 가능했다. 이후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상지대와 성신여대를 거쳐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 정년까지 근무하였다.

형님의 학문 업적은 실로 크다. 이규보 시문학 연구와 처용 연구가 대표적이고 저서로는 17권 여에 이른다. <고려문학 산고>, <처용 연구 전집>, <이승휴 연구 논총>, <동안거사집>, <제왕운기>, <한국 고전 비평>, <어순으로 푸는 단계별 한문 해석> 등이 있다. 학회 활동으로는 ‘동아시아 국제회의 비교문학학회 회장’,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회장’, ‘한국한문학회 평의원’, ‘어문정책정상화 추진회의 공동대표’ 등을 맡았다.

형님의 삶은 아름다운 결실의 시간들이다. 세상 풍파 잘 견디셨고, 바둑판 같은 세상사의 맥점을 제대로 짚으셨다. 자서전 셋째 마당의 소제목들은 책 전체의 중심이다. ‘회심의 착점 아내의 헌신’ 부분의 열 꼭지 모두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 중 가족 화합의 지혜는 법조인 부부 아들 내외보다 더 큰 자랑이다. 명절 나기 노하우나 손자들을 위한 구상도 감탄 수준이다. 형님의 땅띔은 솔로몬 같은 지혜를 가진 참 기독교인 부인을 얻기 위한 시작점이었던 것이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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