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래시댄스’ 제니퍼 빌즈, 그리고 열정
영화 ‘플래시댄스’ 제니퍼 빌즈, 그리고 열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5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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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래시댄스’의 한 장면.
영화 ‘플래시댄스’의 한 장면.

 

얼마 전 늦은 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다 깜짝 놀란 영상을 하나 발견하게 됐었다. 바로 영화 <플래시댄스>의 여주인공 ‘제니퍼 빌즈’의 최근 모습이 담긴 미국 TV 한 토크쇼 영상이었다. <플래시댄스>가 1983년작이고, 그때 제니퍼 빌즈의 나이가 스물이었으니 지금은 예순을 훌쩍 넘겼을 것. 그런데 정말이지 너무 예쁘게 늙었더라. 스무살 때와는 다른 우아함이 가득한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고 영상을 봤었다. 그리고는 본능적으로 40여 년 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플래시댄스>를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됐다.

야밤에 무슨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내게 ‘제니퍼 빌즈’라는 배우는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영화나 드라마 통틀어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배우가 이 언니거든. 뭐 그전에도 있었겠죠. 순서를 정확히 기억 못 하는 것뿐. 잠깐, <푸른산호초>의 ‘브룩 쉴즈’가 먼저였나? 아니다. <천장지구>의 ‘오천련’이었을까? 에이, 아니야, TV문학관 <소나기>에서의 ‘소녀’가 먼저였겠지.

아무튼 그 시절 작은 브라운관 화면으로 <플래시댄스>를 보면서 제니퍼 빌즈에게 소위 반했다는 감정을 느꼈던 것만은 분명하다. 커다란 눈동자에선 이내 별빛이 쏟아질 것 같았고, 수줍은 미소 뒤로 화면 가득 넘쳐흘렀던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는 묘한 부조화를 일으키며 사춘기가 채 지나지 않은 소년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랬다. <플래시댄스>는 당시만 해도 19금 영화였다. 어린놈이 일찍부터 발랑 까졌다고요? 우리 집에 비디오가 들어온 게 재수하던 시절이니까 뭐 꼭 그런 것도 아니예요. 그리고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남자가 여자 좋아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예요? 아직 사춘기니까 곰이나 호랑이를 좋아하는 게 맞겠어요? 아니면 멸종해버린 티라노사우르스를 좋아해야 돼요? 으이구. 어쨌거나 저쨌거나 수십 년 만에 다시 본 <플래시댄스>에서 나의 제니퍼 빌즈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화면 속에서 이젠 그리움으로 남겨진 그 시절의 내 청춘도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참, <플래시댄스>는 지금은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알렉스(제니퍼 빌즈)가 무용수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단순한 이야기지만 발군의 OST와 명장면들이 워낙 많아 내 또래 사람들에겐 이미 전설로 남은 작품이다.

오프닝부터가 <탑건>에 버금가는 역대급인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주제곡으로 Irene Cara의 ‘What A Feeling’이 잔잔히 흘러나오면서 한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등장한다. 그리고는 미국 대도시인 피츠버그의 아침 풍경이 잠시 펼쳐지다 한 제철 공장으로 화면이 바뀐다. 여러 사람이 작업 중인 그곳에서 카메라는 유독 한 사람을 자주 비추는데 그는 지금 용접 마스크를 쓴 채 불꽃을 튀겨가며 열심히 용접을 하고 있다. 그러다 잠시 쉬기 위해 마스크를 벗는데 그만 사진 속의 저 얼굴이 튀어나온다. 환장한다, 진짜. 그랬다. 주인공 알렉스는 밤에는 나이트클럽 댄서로, 낮에는 용접공으로 일하는 열혈 소녀였다.

한참 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알렉스. 밤일을 가기 전까지 시간이 남은 그녀는 잠시 춤 연습에 매진한다. 개인적으로 <플래시댄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데 무용복으로 갈아입은 알렉스는 한쪽 발에 테이프를 감은 뒤 온몸을 미친 듯이 털고 흔들고 돈다. 그녀의 몸에서 튕겨 나오는 땀은 용접공일 때 튕겨 나왔던 불꽃과 같았고, 그 속에서 미친 템포로 흘러나오는 Michael Sembello의 ‘Maniac’. 분명 그 장면은 열정으로 가득 찬 청춘 그 자체였다.

알렉스가 공장 사장인 닉(마이클 누리)을 유혹하는 장면도 역대급이다. 남자들의 유혹에 꼿꼿이 버텼던 알렉스지만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는 닉에게는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런 그를 집에 초대한 알렉스, 그녀는 사진에서처럼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닉 앞에서 브래지어를 벗는데 완전 마술이다. 어떻게저떻게 하더니 글쎄 브래지어가 왼쪽 소매에서 툭 튀어나오더라는 것. 그걸 보던 닉은 넋을 잃게 되고, 당시 어린 내 영혼은 안드로메다로 향했었다.

잠시 후 전설을 넘어 불멸로 남은 마지막 오디션 장면을 뒤로 하고 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됐다. 그랬더니 영화나 드라마 속 여주인공에게도 반했던 그 시절의 열정이 이젠 사라져버린 게 가장 안타깝더라.

그 시절엔 신비롭기만 했던 사랑도 지금은 너덜너덜해졌고, 그렇다보니 누군가에게 반하는 것조차 이젠 부담스럽기만 하다. 심지어 상처도 많고, 피곤한 인간관계조차 점점 줄이려 드니. 솔직히 요즘은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다.

해서 영화 <고령화 가족>에서 흥행참패로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40대의 영화감독 인모(박해일)는 이런 말을 한다. 엄마(윤여정) 집에 얹혀살게 된 그는 미용실 수자(예지원)를 덮치려다 뺨을 맞게 되고, “감독님, 저 사랑하시는 거 아니잖아요”라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이 나이에 사랑이 어딨습니까? 몸이 움직이면 그게 사랑인거지. 그런 건 젊었을 때, 할 일도 많고, 희망도 많을 때 하는 겁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밤, 그래도 예쁘게 늙어준 나의 제니퍼 빌즈가 몹시도 고맙더라.

1983년 9월 21일 개봉. 러닝타임 95분.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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