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팔중산춘 울산기원설 고증결과?
오색팔중산춘 울산기원설 고증결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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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청 정원에는 울산동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꽃나무가 심겨 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이 울산에서 채취해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알려진 오색팔중산춘(五色八重散椿)의 묘목을 임진왜란 발발 400주년이 되는 1992년에 가져와 심은 것이다.

그러나 이 동백의 울산기원설은 그 정황에 무리가 있어 진위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울산시는 지난해 4월 이 동백의 울산기원설에 대한 고증을 울산역사연구소에 의뢰했다.

이에 울산역사연구소는 1차적 검토를 거쳐 정우규 박사(한국습지환경보전연합 이사장)에게 연구를 의뢰하는 등 고증작업을 지난해 말까지 진행했다.

울산역사연구소는 지난달 ‘오색팔중산춘 울산기원설’ 고증결과를 울산시에 보고했다.

그런데 울산역사연구소와 울산시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고증결과를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오색팔중산춘 울산기원설’이 거짓이라면 울산동백이라 이름 지어 시청 정원에 옮겨 심은 것이 한낱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울산시 중구가 학성공원에 이 동백을 심은 것도 마찬가지다.

또 울산동백을 보존하겠다는 시민활동이나 해마다 이 동백에서 꽃이 필 때면 벌어지는 헌다의식 (獻茶儀式)도 근거를 잃게 된다. 그래서 울산역사연구소의 고증결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문화관광해설사는 지난해 이 동백의 울산기원설 진위를 교토시에 직접 서면으로 질의하기도 했다. 이 동백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두고 있는 교토시는 회신에서 “근거 사료(史料)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래서 울산역사연구소의 고증결과에 더 관심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2019년 가을, 교토의 지장원(地藏院)이라는 작은 사찰을 둘러볼 수 있었다. 바로 울산에서 가져갔다는 오색팔중산춘이 있는 절이었다. 이 동백을 보기 위해 그 절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말로만 들었던 오색팔중산춘이 경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가을이어서 꽃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 동백 때문에 이 절은 춘사(椿寺)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일본사람들은 ‘춘(椿)’을 동백이라는 뜻으로 새긴다. 울산 온산 앞바다에 있는 동백섬도 일인들은 춘도(椿島)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춘(椿)’의 쓰임새는 다르다. 남의 아버지를 높여 부를 때 ‘춘부장(椿府丈)’ 또는 ‘춘당(椿堂)’이라고 한다. ‘춘수(椿壽)’라고 하면 ‘오래도록 산다’라는 뜻이다.

이 절의 산문 옆에는 교토시에서 제작한 안내판이 있었다. 안내문에는 이 동백에 대해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기진(寄進)했다고 전해진다”라는 설명만 있었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울산에서 가져와 히데요시에게 바친 것이라는 내용은 언급돼 있지 않았다.

울산왜성을 축성하고 여기서 두 차례의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는 기요마사가 울산에서 희귀한 동백을 발견해 채취해서 히데요시에게 헌상했다는 얘기가 일본에서 떠돌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때는 이 절에서 이런 말을 퍼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은 채였다.

오색팔중산춘은 다섯 색깔을 띠고 다른 동백과는 달리 꽃잎이 여덟 겹일 뿐 아니라 송이째 떨어지는 다른 동백과는 달리 꽃잎이 흩날리며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희귀종으로 분류돼 보호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통신판매가 이루어질 정도로 보급이 많이 됐다.

울산시는 힘들게 고증한 ‘오색팔중산춘 울산기원설’의 결과를 있는 그대로 시민들에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강귀일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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