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석 칼럼] “실례지만 등기부등본 좀 떼보겠습니다”
[김영석 칼럼] “실례지만 등기부등본 좀 떼보겠습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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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어른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말하면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어른들은 대부분 ‘그 아이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아이는 나비를 수집하니?’와 같은 질문 대신 ‘그 아이 아버지의 수입은 얼마라든?’과 같은 질문만 던진다는 이야기. 요즘으로 치면 사는 동네가 어디고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아버지 차는 어떤 브랜드인지를 묻는 것과 같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상대방의 수입과 자산에 관심을 갖는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하지만 요즘은 여기에 더해 등기부등본까지 떼 보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사람을 알기 위해 등기부등본을 떼 본다는 생각, 과연 예전에는 상상이나 해봤던 일일까?

얼마 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사연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내용인즉 결혼을 전제로 만나오던 상대가 자신과 부모님의 집 두 채에 대해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재무구조를 확인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로 인해 고민이 된다는 사연이었다. 세를 얻는 입장도 아닌데 상대는 그게 왜 궁금했을까?

글쓴이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 터라, 남자 부모님과 남자 소유의 아파트에 대출이 얼마나 끼어있는지 궁금해했다고. 한마디로 대출이 70%인지, 50%인지 그래서 은행 소유인지 말 그대로 자기 소유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요즘 하도 집값, 집값 노래를 불러대니 현실적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두 사람 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아찔하기도 하다. 만약 남자 집의 대출 금액이 소위 말하는 ‘영끌’까지 한 상황이라면, 그 여성은 결혼을 어쩌려고 했을까?

비단 이런 현상이 결혼을 앞둔 사람들 사이에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일찍 안 학생들 중 어떤 아이들은 같은 학급 인원 중 누가 전세를 사는지, 월세를 사는지 등을 파악해 나름대로 계급을 구분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때 동원되는 것 역시 등기부등본이다. 등기부등본은 주소만 알면 누구라도 뗄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

물론 지금 등기부등본 시스템이 잘못됐다고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요즘같이 전세사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등기부등본 확인은 최소한의 안전망이니까. 다만 정작 말하고 싶은 건 ‘집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관점의 변화에 관해서다.

이제 우리는 집이라는 말보다 ‘부동산’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져 가고 있는데 부동산은 말 그대로 건물 혹은 토지처럼 옮길 수 없는 재산을 일컬을 때 쓰이는 용어로 일상적 어휘라기보다 경제적, 재무적 용어에 더 가깝다. 이에 비해 가족이 모여 사는 보금자리, 사람과 사람이 살을 맞대고 살고 한 식구(食口)가 되어 함께 따듯한 저녁을 먹는 그런 공간으로써 이해하는 관점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린 왕자가 이 상황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결혼이란 그저 신성한 것, 두 사람의 신뢰와 사랑이면 만사 오케이! 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등기부등본을 뗀 상대 여자를 그저 비난하기 위함만도 아니다. 그녀의 미성숙한 행동 역시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했을 테니까. 다만 우리 사회가 과연 어디까지 물질의 기준에 사로잡혀 다른 소중한 가치를 희생시켜야 할까? 하는 질문을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던져봐야 한다는 점이다.

빌라에 사는 아이들을 빌거(‘빌라 거지’의 줄임말), LH에 사는 아이들을 휴거(‘휴먼시아 거지’의 줄임말)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어디선가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소수의 철없는 아이들 행동이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들 모두가 철없는 어른들이 되지는 않을까, 필자 자신부터 걱정이 된다. 우리는 언제나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는 ‘현실이 어쩔 수 없으니까’라는 말로 눙치곤 하며 회피하곤 했으니까…….

김영석 ‘도서출판 카논’ 대표 ·단편소설 <호랑지빠귀 우는 고양이의 계절>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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