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 불편한 친절
[아침 단상] 불편한 친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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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과학이 탄생시킨 카카오톡은 사람과 세상, 그 이상을 연결하는 간편한 메신저 기능을 한다. 1:1 개인 톡은 숲이 우거진 비밀의 정원처럼 외부 노출 없이 특정 개인 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단체 카톡방은 개인 간 대화의 한계를 넘어 친목, 업무 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에서 소통하는 편리한 기능이다.

간단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 혹은 눈길을 끄는 그림엽서까지 전달하는 기능은 이미 일상에서 유용하게 사용되는 통신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루의 시작이 카카오톡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편리한 기능이 유용하게 쓰이지 않고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 새벽 ‘카톡’ 소리에 단잠이 선잠으로 바뀌기 일쑤다. 이런 경험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 좋은 내용이 담긴 글이거나 다양한 시화(詩畵) 엽서가 주를 이룬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좋은 그림과 좋은 글이 있어 보내 드립니다.”

제목: ‘삼여(三餘)’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와야 하고‘ 일 년은 겨울이 여유로와야 하고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와야 하고… 그것을 三餘라고 합니다.’

제목: 인생편지.

‘삶이 대단하고 인생이 길 것 같아도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니며 긴 것도 아니랍니다. 내가 팔팔하던 그 시절에는 시간도 그렇게 더디게 가고 세월도 한없이 느리게만 가더니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나니… 길 것 같은 인생, 절대로 긴 것이 아니랍니다.’

제목: ‘봉생마중 불부직(蓬生痲中不扶直)’

‘굽어지기 쉬운 쑥대도 삼밭 속에서 자라면 저절로 저절로 곧아진다는 뜻이다. 좋은 벗들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좋은 만남이 좋은 인연을 낳고 좋은 인연이 좋은 인생을 낳는다. 올곧고 덕 있는 당신이 나의 삼밭 같은 인연입니다.’

내용 대부분은 마치 세종대왕이 어리석은 백성을 가르치려는 뜻을 적어놓은 듯 좋은 글귀들임에는 분명하다.

처음 몇 차례는 받는 즉시 답신을 보냈다. 좋은 글을 보내온 쪽 대부분이 연장자이기도 하거니와 또 좋은 글을 받았으니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 아무리 좋은 글이라고 할지라도 시도 때도 없이 받게 되면 좋은 글은 본래의 의미가 퇴색될 뿐만 아니라 받는 이에게는 시청각(視聽覺) 공해로 다가오게 된다.

이른 아침은 물론이고 낮에도 저녁에도, 어느 땐 밤 깊은 시간에도 보내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 다른 시청각 공해도 빼놓을 수 없다. 이상한 투자를 유도하는 문자 혹은 상품 광고 문자도 심심찮게 받게 된다.

어느 땐 똑같은 내용의 글과 그림엽서가 돌고 돌아 하루에 두세 차례 받기도 한다. 이들은 어째서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불편한 친절을 베푸는 걸까? 아마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혼자서 노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보낸 이가 좋은 뜻에서 보내온 글과 시화 엽서가 수신인에게 문자 폭탄? 혹은 시청각 공해? 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불편한 친절이 될 수밖에 없다. 어린아이가 혼자서도 잘 놀 듯이 나이가 들수록 혼자서도 잘 노는 방법을 익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최정원 소설 <울새가 노래하는 곳>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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