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海山의 얼기설기] 조심에서 초심으로
[徐海山의 얼기설기] 조심에서 초심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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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소리와 동시에 순간 혼절(昏絶)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이었다. 방문에 설치해 둔 철봉이 느슨해지면서 앞으로 고꾸라졌다. 몸이 거실 바닥과 일치할 정도로 맞닿았다. 뒤로 넘어졌으면 뇌진탕을 피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면으로 넘어져 더 큰 불상사는 모면했다.

그러나, 고꾸라진 혼절의 대가는 참혹했다. 엎어지면서 본능적으로 바닥을 짚은 왼손 엄지가 심상찮았다. 순식간에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심하게 부어올랐다. 다른 손가락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왼손 엄지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다친 손가락은 없었다. 그것도 잠시, 입안에서 뼛조각이 씹히는 느낌이 들었다. 입속에 든 걸 툭툭 뱉어내는데 하나둘이 아니었다. 윗앞니를 중심으로 좌우 몇 개의 치아 상태가 일부는 부러지고 실금이 보인다는 게 아내의 말이었다. 손가락과 치아에 중대한 상처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성탄절 늦은 밤에 일어난 사고라 병원 응급실 대신 집에서 간단하게 처치하고, 다음날 곧바로 병원을 찾았다. 먼저 손가락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정형외과에 들렀다.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고 왼손 엄지는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엑스레이 촬영 사진을 보니 제법 심하게 부러졌다. 의사는 수술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손가락을 수시로 써서 일하는 직업이라 한동안 불편을 감수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갑갑하고 아득했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고, 하룻밤을 병실에서 보냈다.

정형외과에서 퇴원한 뒤엔 곧장 치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 임플란트 시술로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치과에 당분간 갈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등장하니 의료진도 의아한 표정이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뒤 상태를 확인한 결과, 무려 다섯 개의 치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뿌리가 깊고 강한 송곳니마저 뽑아야 할 정도로 상처는 중했다. 또다시 임플란트 시술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치아는 한번 경험이 있었지만, 손가락 골절은 처음이라 예상한 것 이상으로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손가락 한 마디 골절은 일상의 평온을 일그러뜨렸다. 깁스한 왼손을 사용할 수 없어 세수와 머리 감는 것부터 곤혹스러웠다. 한쪽 팔로 옷을 입고 벗는 것도 불편하고 어색했다.

문제는 양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한 손으로 작업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깁스를 풀기까지는 스마트폰이 컴퓨터를 대신해 그럭저럭 업무는 볼 수 있었다. 철심을 박은 수술로 음주는 절대 금지였다.

덕분인지 오십 일 넘게 강제 금주 상태다. 십수 년 전 자의(自意)로 6개월 정도 술을 마시지 않은 이후 타의(他意)에 의해 두 번째로 긴 금주 이력을 써나가는 중이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금주 상태가 지속되면서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도 들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고, 중요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손가락 한 마디가 미치는 일상의 파장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신체의 각 부위와 장기는 쓸모를 느끼지 못할 때는 있어도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름 없는 풀과 꽃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조심하지 않고 방심(放心)하면 언제든 사달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악몽 같았던 2023년이 끝난 줄 알았다가 막판에 불의(不意)의 일격을 호되게 당했다. 마지막 액땜치곤 값비싼 대가였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지 않은 이창호 바둑이 왜 강한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 승부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승리했다고 자만해 샴페인을 일찍 터트리면 패배한다는 격언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제 설날도 지나 음력으로도 완벽한 새해다. 방심하지 않고 조심하면서 초심을 되새길 때다.

徐海山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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