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 칼럼] 제조데이터 통합 시대를 꿈꾸며
[독자위원 칼럼] 제조데이터 통합 시대를 꿈꾸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1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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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초엔 연구소기업은 각종 성과조사 문서를 작성하느라 진땀을 뺀다. “한낱 성과를 묻는 문서가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기관마다 양식이 다르다. 내용은 별반 차이 없으나, 한 기관에서는 아래아 한글로 문서를 요청하고 다른 기관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양식을 내민다. 심지어 같은 기관도 부서에 따라 각기 다른 서식과 파일 형식으로 요청한다. 투자기관에서는 한술 더 뜬다. 성과 내용이 좋으니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만들라고 한다.

같은 내용 즉, 동일한 데이터를 가지고 낭비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뜻이다. 기업 및 연구자 현황이 이러한데, 산업 전반으로 보면 얼마나 큰 손실이 발생하겠는가. 그렇기에 데이터만 보내고 원하는 곳에서 그 데이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한다면 훨씬 편리하고 효율적이지 않겠나. 이 구조를 체계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통합과 표준이 선행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산업 원동력인 제조업에서는 다양한 데이터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발주 받는 수많은 기업 간 거래 및 영업 데이터가 발생하고, 공급망 차원에서 관리하는 데이터들을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공장에선 재료 및 재고를 관리하는 데이터들로 혼재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공장 내부 기계 장비에서 나오는 데이터와 이를 제어하는 PLC 및 로봇 데이터, 공정 데이터 및 경영과 운영에 관련된 데이터까지 천문학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모든 데이터가 통합되어 있지 않고, 제조데이터에 관한 표준 필요성과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수집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제조데이터들이 휘발되고 있다는 말이다. 제조산업 생태계에서 데이터 간 통합과 표준의 중요성은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깃발을 흔들며 외쳤다. EU 수준에서 GAIA-X라고 하는 산업별 개방형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일찍이 시작했다. 분명한 사실은 유럽과 미국은 수십, 수백조를 쏟아부으며 데이터에 대한 투자에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글로벌 호흡이 가파르게 질주하는데 국내 현황은 어떨까. 흥미롭게도, 정부 및 기관 차원에서는 스마트제조 정책과 표준 도입에 있어서 디지털 전환에 대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글로벌 움직임에 발맞추어 한국형 제조데이터 표준화 및 정책을 도입 중이다. 스마트공장이라고 부르는 스마트제조 성적표도 마냥 부정적이지 않다. 양적 성장에만 그치지 않고, 제조데이터를 활용하여 KPI 성과지표가 급증해 비약적 성장을 이뤄낸 레퍼런스 공장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K-스마트 등대공장을 넘어 이젠 자율화공장를 로드맵 삼아 마일스톤이 선명해지고 있다.

오히려 민간의 발걸음이 더디다. 글로벌 전략은 고사하고, 표준 및 제조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 업무 증대며 인력 및 에너지가 소모되는 불편한 일로 인식하고 있다. 제조데이터 철학은 뒤로하고, 현실에 맞는 경제 논리가 앞선다. 표준에 맞추는 에너지 소모가 큰 업무보다 제품 생산 KPI를 맞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데이터 통합에 맞춰 제조데이터 활용방안을 발굴하고 혁신 및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게 필요하나, 아직 시기상조라는 판단이다.

유럽과 미국이 단순 표준 및 통합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천문학적 자금과 에너지를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전략 안에는 제조데이터 통합과 표준의 중요성이 녹아있다. 국내 글로벌 선진 기업들 역시 이를 간과하지 말고 적극적인 플레이어로 참여하여 목소리를 높여달라는 호소다. 제도데이터는 자율화공장 등 경쟁력을 올려줄 강력한 무기임을 명심하자.

한아람 ㈜에이비에이치 대표이사, 울산청년CEO협회 회장,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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