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태화루 詩文에서 찾은 십리대숲의 흔적 下
[조상제의 자연산책] 태화루 詩文에서 찾은 십리대숲의 흔적 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07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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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화루 시문(詩文)에서 대나무나 대숲을 언급한 구절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1517년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울산에 왔다가 남긴 시에 청찬벽족갱수기(靑?碧簇更輸奇=파란 화살대는 더욱더 기이하네), 선조 4년(1571)에 울산 군수를 지낸 이제신(李濟臣, 1536~1584)의 시에 소황면앙무헌두(?篁?仰舞軒頭=성긴 대나무는 처마 끝에서 춤추고), 흥해(포항) 군수를 지낸 김욱(金頊, 1672~1753)의 시에 죽림청초록군유(竹林靑草鹿群遊=대숲과 푸른 풀밭에서 사슴들이 노니네),

석남사 주지를 지낸 월하(月荷) 스님(1773~1850)의 시에 죽지춘조명(竹枝春鳥鳴=대나무 가지에 봄새들이 지저귀네), 1855년에 울산부사를 지낸 심원열(沈遠悅, 1792~1866)의 시에 만야황음취욕류(滿野篁陰翠欲流=들에 가득한 대숲에 푸른 빛이 흐르네), 울산 출신 사림인 조학식(趙鶴植, 1833~1903)의 시에 사촌묘죽망망야(沙邨?竹茫茫野=사촌 대숲이 들판에 아득하고),

『조선환여승람』 울산군 누정(樓亭)조 윤정린(尹廷璘)의 시에 죽수연운소추(竹樹烟雲素秋=안개 낀 대나무 숲에 가을이 찾아왔네), 1894년 『영남읍지』 울산부(蔚山附)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이근필(李根弼, 1816~1882)의 태화루중수상량문에 지유수죽무림(地有修竹茂林=땅에는 수죽(修竹 : 길게 자란 대나무)이 무성하게 숲을 이루었고), 1875년 울산부사로 부임한 장석룡(張錫龍)의 태화루중수기(太和樓重修記)에 연운죽수지제견어강산지외자(煙雲竹樹之第見於江山之外者=구름 낀 대나무 숲만이 강산 저편에 보인다)….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태화루 시문에는 1600년대 후반 태화강 대숲의 온전한 모습이 나타나 일제강점기 전까지 이어진다.

시간을 내어 태화루를 찾았다. 먼저 800여 년 전 노봉 김극기가 보았던 단풍나무, 녹나무, 죽전의 흔적을 찾아본다. 겨울에도 죽전은 숲을 이루었으나 단풍나무와 녹나무는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실상 녹나무는 울산에서는 찾기 어려운 나무이다. 무슨 나무를 보고 김극기는 녹나무라고 했을까? 아니면 800년 전에는 이곳에 실제로 녹나무가 자랐을까?

 

녹나무.
녹나무.

최근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 매화나무가 “나 여기 있소” 하면서 모습을 드러낸다. 김극기는 매화나무를 본 것일까? 용두암 위 태화루 서쪽 절벽에는 죽전(竹箭 : 이대)이 숲을 이루고, 절벽 가운데는 대나무와 죽전이 섞여 있으며, 모감주나무도 자라고 있다. 모감주나무가 만개하는 날이면 태화루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승경(勝景)이 된다.

그리고 태화루 앞 동쪽 절벽 위에는 왕대(Phyllostachys reticurata)가 자라고 있다. 대나무 잎의 숫자나 견모(肩毛) 그리고 줄기 마디의 테를 보면 분명 왕대의 특징을 보이는데, 절벽 위 척박한 땅에서 자라서인지 줄기도 가늘고 키도 작다.

누각에 오르니 멀리 은월봉(隱月峯)이 보이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우리 선인들이 노래했던 그 대나무 숲이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선인 중에는 경상도 관찰사도 있고, 울산부사도 있고, 사림(士林)도 있고, 스님도 있다. 태화루에 올라 태화강 죽림을 노래한 선인들이 있어 오늘날 십리대숲은 더 소중한 보물이다. 우리는 선인들의 얼과 혼이 스며있는 이 보물을 백리대숲으로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 끝 >

조상제 ‘울산 민물고기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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