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그 식지 않을 사랑
울산, 그 식지 않을 사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9.0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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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진하는 조국의 비약을 상징할 / 건설의 도시여 우리의 울산 / 동해의 물과 같이 뜨는 해 같이 / 발랄한 기상으로 새아침을 노래하자 / 기름 부어 축복된 우리 고장을 / 한마음 한뜻으로 지켜 가꾸자’(울산의 노래)

1970년대, 울산공업축제의 서막을 알리던 울산공설운동장, 울산정유공장과 한국비료, 동양나일론, 삼양사 등 각 기업을 대표하는 기수단과 각급 학교의 기수들이 근로자들과 학생대표들을 이끌고 들어와 본부석 앞에 나란히 정렬하고, 국민의례에 이어 울산시장이 우렁찬 목소리로 축제 선언을 하면 축하 팡파레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대단원의 막이 오른다.

이어서 예비군 군악대가 맛깔나게 전주를 뿜어대면 학생과 시민들이 흥겹게 합창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바로 그 곡이 ‘울산의 노래(박목월 작사, 박시춘 작곡)’다. 지금도 고향 울산의 시민들 중에는 더러 기억하는 분들이 계시리라. 그 예비군 군악대의 선두에서 눈이 부시게 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지휘봉을 잡고, 맵시 있는 몸놀림으로 악대를 지휘하시던 이일우 아저씨의 세련된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저편의 아련한 흑백 필름 한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혼의 아픔을 겪고 외롭고 힘들게 살면서도 트럼펫을 향한 열정만은 놓지 않으셨지만 결국, 몇 해 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뜨셨다는 비보를 접했다.

이일우 아저씨는 트럼펫 연주자로, 초창기 UBC(울산문화방송)의 초대 악단장을 지내신 분이다. 그 분은 한국연예협회울산지부장도 역임하며 <와이즈멘가><사랑은 장난인가요><당신은 사랑인가요><함월산 진달래> 등의 가요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UBC는 중앙시장 안에 있던 ‘월성다방’을 공개방송장소로 빌어 썼는데, 일주일에 한 번 씩 갖던 노래자랑 프로에서 이일우 아저씨가 악단을 지휘하던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필자가 나중에, 학성고등학교 브라스밴드 창단멤버로 클라리넷을 연주하게 되었던 것도 아마 이일우 아저씨의 영향을 받아서가 아닐까 싶다.

그때 울산문화원 이사였던 선친(금곡·김석보/1998년 작고)과 이일우 아저씨는 의형제지간으로 한국연예협회 울산지부의 업무를 분담, 문화예술 향기에 목말라 하던 울산에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해 보겠노라 자청하며 열과 성을 다 하셨다.

그 당시 울산은, 공업도시로 선포된 이후 공단으로서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었지만, 반면에 문화예술분야는 척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문화예술진흥에 작은 밀알이 되고저 헌신한 분들이 있었으니, 이일우 아저씨도 그 중의 한사람이었다.

악단 멤버들의 대부분은, 밤에는 야간업소에서 생업을 위해 뛰는 한편, 방송출연을 비롯, 울산의 각종 행사가 있을 때면 기꺼이 애향심을 앞세워 헌신하였으니 그 숨은 공로 앞에 새삼 머리 숙여 진다.

해를 거듭할 수록, 애향심을 불태우며 울산을 사랑한 분들이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내 고향이, 공업화의 거센 물결에 밀려 잃게 될 지도 모를 역사적 진실과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애써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 여러 어른들께 다시 한번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선친께서 하늘나라로 가신지도 어언 10 여년. 기일을 맞을 때마다 그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나의 가슴속을 파고 든다. 재작년에는, 오랜 세월 울산문화원장을 역임하시며 울산문화예술 창달에 기여하신 박영출 선생께서 타계하셨다. 선친과는 끈끈한 정을 나누며 애향심을 불태우던 분이셨는데 세월의 큰 흐름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음에 안타까운 마음 가눌 길 없다.

그러나, 우리 울산인들이여!

고향에 남아 묵묵히 선산을 지키는 부모 형제와 선후배들, 그리고 고향을 떠나 향수를 달래는 향우들이여!

이제 우리, 먼저 가신 선배님들이 이룩해 놓은 소중한 발자취를 이어받고 뜨거운 애향심을 불태워 국내는 물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멋진 도시로 거듭날 수 있도록 우리 울산의 깃발 아래 모여 서로 어깨동무를 하자. 그리고 빙글빙글 힘차게 돌면서 흥겹게 불러보자. 내 고향이 자랑스럽고, 객지에서 외롭고 힘들 때면 남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흥얼거려 보던 바로 그 노래! ‘울산 아가씨’를.

‘동해나 울산은 잣나무 그늘 / 경개도 좋지만 인심도 좋고요 / 큰애기 마음은 열두폭치마 / 실백자 얹어서 전복쌈일세 / 에헤에에 / 동해나 울산은 좋기도 하지 // 울산의 아가씨 거동 좀 보소 / 님 오실 문전에 초롱 달고요 / 삽살개 재놓고 문밖에 서서 /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다네 / 에헤에에 / 울산의 아가씨 유정도 하지’

/ 김부조 시인·동서문화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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