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 볼링의 마력
[아침 단상] 볼링의 마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2.04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포 전에 작은딸이 함께 볼링 치러 가자는 제안을 했다. 20여년 만에 볼링을 다시 치려니 조금은 설레고 기대도 되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진열대 위에 앉아있는 볼 중에 나의 몸무게와 손가락에 맞는 것을 골랐다. 남편의 조언을 몇 가지 귀담아들은 후 준비운동을 했다.

조심스럽게 한 발짝 한 발짝 발을 옮긴 후 공을 바닥에 힘차게 굴리고는, 다 함께 숨죽이며 볼링공이 볼링 핀을 향해 드르륵 굴러가는 것에 잠시 눈을 고정하고 기다렸다. 그때 열 개의 핀이 한꺼번에 쓰러지는 좋은 운수가 두 번 찾아왔다.

순간 가족들은 우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로 기쁜 마음을 보내주었고, 내 몸에서는 어떤 묘한 기분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볼링을 쳐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일지도 모른다.

때로 적응하기가 무척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느껴지던 심리적 긴장 상태가 몸 어딘가에 쌓여서 불편함을 겪을 때가 있었는데, 그걸 단번에 확 날려버린 느낌이랄까, 볼링을 치면서 맛보는 파괴감은 일상에서는 좀처럼 접할 수 없는 순간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후엔 본 실력이 드러나고 때론 도랑으로 빠지면서 조금은 민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잘하면 잘하는 대로 칭찬해 주고 마음먹은 만큼 잘되지 않으면 서로 격려해 주는 운동인지라 사람 사이의 친밀도를 높여주는 따뜻한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소중한 가족 가운데 한 분이 중병을 앓고 있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젖어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런 탓인지 생기발랄하던 예전의 나의 모습답지 않게 우울해지기도 했는데, 볼링을 치고 나면 마음이 좀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지난 주말엔 어린 자녀들과 함께 볼링장을 찾은 가족을 보았다. 아들이 볼링공을 들고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서 있는 듯 보였고, 아이 아빠는 어떻게 하면 집중해서 핀을 정확하게 넘어뜨릴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지 않은 탓에 공이 도랑으로 빠지는 걸 보고는 실망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서기도 했다. 그렇지만 힘껏 공을 굴린 아이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는 그들의 모습에서 온돌방 같은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회사 동료들과 건전한 회식 문화의 대안으로 볼링을 함께 치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운동 효과를 보는 동시에 음주 횟수도 자연스레 줄어들어 건강도 지키고, 공통의 화젯거리도 생기며, 친목이 도모되면서 스트레스도 날려 보내고, 싱그러운 에너지가 충전될지도 모른다. 그날 딸아이가 볼링을 치자고 한 이유가 어쩌면 엄마와 소통하기를 바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물다섯이나 된 여식이 내겐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일 때가 있는지 못마땅한 일이 있으면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잔소리도 안 한다. 다 너를 위한 말이야”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행동에 대해 참견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명랑하던 딸내미의 입꼬리가 내려가고 목소리는 저음이 되기 일쑤였다. ‘그래, 나이가 몇 살인데 본인이 알아서 잘할 건데,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고마운 딸에게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았구나’ 하고 스스로 반성도 했었다.

그런 일로 딸과 잠시 어색했던 사이가 볼링을 함께 치면서 교감하고, 대화도 많이 하면서 둘과의 관계가 막히지 않고 예전처럼 잘 통하게 되었다. 아빠와 셋이 함께 운동하자고 권했던 딸아이의 듬쑥한 마음이 느껴졌다.

볼링은 다른 종목과 달리 함께 치면서 서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고 칭찬하고 축하와 위로를 주고받으면서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 가족이 다 함께 모여 볼링 칠 날을 기대해본다.

천애란 사단법인 색동회 울산지부 이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