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버러 참사를 상기하자
힐스버러 참사를 상기하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31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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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셰필드에 있는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는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 간의 FA컵 준결승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평소 충성도가 높았던 리버풀의 팬들은 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단체로 버스를 대여해 경기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로가 정체되는 바람에 경기 시작 직전에야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FA 규정에는 경기 시작 15분 전에 입장을 완료해야 해서, 힐스버러 경찰들은 빠른 입장을 유도하기 위해 출구를 비롯한 모든 게이트를 개방했다.

그 바람에 외부에서의 입장은 순조로웠으나, 문제는 경기장 안에서 발생했다. 내부의 좁은 복도를 통해 사람들이 계속 밀고 들어온 것이다. 이로 인해 정원이 1천600명인 입석 관중석에 이미 3천~5천 명에 달하는 인파가 들어찼는데도, 이를 모르는 경기장 진행요원들은 계속해서 입장을 유도했고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면서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을 밀치게 됐다.

인파에 눌려 압사 직전에 몰린 사람들 중 일부는 2층으로 기어 올라가고 펜스 쪽 사람들은 펜스를 넘어 경기장으로 대피하는 지경이 되었다. 결국 ‘훌리건(스포츠 등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관중)’이 필드에 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둔 보호 펜스가 사람들에 밀려 경기 시작 5분 만에 무너져내리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진행 측은 경기를 중단하고 구급차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구급차도 경기장 안에 들어오기 힘들었다. 구급차 42대가 출동했으나 경기장 안에는 겨우 3대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관중들이 임시 들것을 만들어 다친 사람들을 구급차로 옮겼고, 숨을 못 쉬는 사람들에게는 심폐소생술을 했다. 사망자가 94명, 부상자가 766명인 대형 참사였다. 부상자 중 3명이 사고 후유증으로 추가로 숨지면서 총 97명이 사망했다. 영국의 축구 관련 사고 중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로 기록됐다.

당시 영국 총리인 마거릿 대처는 사고의 원인을 훌리건의 난동에 의한 것이라며 경찰들을 옹호했고, 타블로이드 신문인 ‘더 썬(The Sun)’에서는 사건 당시 리버풀 훌리건들이 사망자들의 주머니를 뒤져서 물건을 훔치고 경찰을 폭행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내는 등 참사의 책임이 리버풀 훌리건들에게 있는 것으로 몰았다. 이런 주장이 어느 정도 대중들에게 먹혔던 데에는 1985년 5월 29일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발생했던 ‘헤이젤 참사’의 여파가 컸다.

당시 브뤼셀 헤이젤 경기장에선 유러피언컵 결승전으로 잉글랜드 리버풀FC와 이탈리아 유벤투스FC가 맞붙을 예정이었는데,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술에 취한 리버풀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유벤투스 서포터들이 폭행을 당해 39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로 인해 리버풀FC는 물론 잉글랜드 축구팀들은 한동안 유럽대항전에서 제명된 전력이 있다.

힐스버러 참사 20주년인 2009년에 이르러서야 영국 정부는 ‘재해 및 그 여파에 대한 문서 보고서 작성을 위해 독립적인 패널’을 구성했다. 그리고 23년만인 2012년 9월 12일에 마침내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장엔 이미 사고의 발생 요인이 있었고, 경찰이 팬들에게 조직적으로 책임을 전가하려 했으며, 응급구조대의 초기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은 진술 164건 중 116건을 바꾸거나 삭제하여 비난의 대상을 리버풀 팬들에게 돌렸다. 즉 당시 통제와 관리의 부실을 숨기려고, 오히려 팬들을 술에 취한 폭도로 표현하며 티켓을 구입하지 않고 마구 입장했다고 거짓 주장을 한 것이다. 또 현장에서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피해자 59명이 추가로 사망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하원 연설을 통해 유가족들에게 정식으로 사죄했고, FA 역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26일, 영국 법원은 조사 내용 17개 전부에 대해 경찰의 과실이 명백하고 반면에 리버풀 팬들은 조금밖에 잘못이 없었다는 판결을 내리며, 마침내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힐스버러와 유사한 사고가 있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다. 며칠 전인 1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소위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의결하면서 ‘특별법안’은 다시 국회로 반송되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기야 영국에서도 27년이나 걸린 일이 아니던가.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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