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자의 발효 이야기 ⑥] 누룩(Koji)의 힘, 그 위대한 발효 유산
[이인자의 발효 이야기 ⑥] 누룩(Koji)의 힘, 그 위대한 발효 유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3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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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70을 목전에 둔 지난해, 대학원 미생물학 박사과정에 합류하기로 했다. 쌀누룩(Koji)을 사용한 발효를 더 깊이 이해하려면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필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가 결정되고, 연구할 주제를 선정하는 주례 세미나를 통해 제품의 개발 및 생산과 관련된 궁금증들이 과학적으로 해명되면서 뒤늦게 합류한 대학원 생활에도 보람이 찾아왔다.

2학기 말, 연구 주제를 압축하는 과정에서 지도교수가 흥미로운 제안을 해왔다.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에서 나오는 해산물, 특히 우리 식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젓갈’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식문화, 즉 K-FOOD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특히 젓갈 특유의 냄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김치가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인기를 얻는 과정에 외국인들, 특히 채식주의자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젓갈 냄새 문제가 큰 과제로 다가왔다.

멸치는 단백질과 칼슘을 풍부하게 함유한 훌륭한 식재료이다. 젓갈은 멸치와 소금을 적정비율로 혼합하여 6개월에서 1년 동안 상온에서 발효시킨다. 그러나 발효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냄새는 주로 단백질이 부패하거나 변질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젓갈 발효 방식에 새로운 기술을 더하기로 했다. 이전까지 멸치와 소금으로만 발효되던 젓갈에 쌀누룩을 추가한 것이다.

쌀누룩에는 ‘프로티아제’라는 단백질 분해효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단백질의 부패를 막고, 발효속도를 높이며, 아미노산으로 바뀌어 냄새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쌀누룩에 함유된 100여 종의 분해효소는 발효 결과물의 상품성, 즉 액젓의 투명도, 맛과 향, 생산량 증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미 쌀누룩을 이용한 멸치젓갈의 상품성 향상을 완성해 두고 있었기에 지도교수의 공동연구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쌀누룩의 분해력은 우리 생활의 여러 면에서 입증되고 있다. 특히 축산 폐수의 냄새는 환경 오염의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양돈 농가의 폐수 냄새는 속성양돈을 위해 지나치게 많이 공급된 사료로 인해 소화되지 못한 배설물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나는 냄새다.

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안은 사료를 충분히 발효시켜 소화불량이 없는 사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누룩은 이 발효 사료를 공급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쌀누룩의 힘이 양돈업계에서 구세주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발효식품의 선진국 일본에서 이와 관련된 재미난 일화가 있다. 축산 폐수로 악취가 심한 양돈 농가에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 모여들었다. 까마귀 떼는 돈사(豚舍)는 물론 돼지우리가 있는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돼지의 배설물이 부패하는 냄새가 까마귀 떼를 유혹한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이번에는 쌀누룩으로 개발한 액상 사료를 돼지에게 먹여 보았다. 쌀누룩으로 발효시킨 액상 사료에는 다량의 효소가 들어있었고, 이 사료를 공급한 덕분에 소화가 완전히 된 상태의 축산 배설물에는 부패 냄새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을에 모여들었던 까마귀 떼는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고, 발효 사료를 먹인 돼지는 최상급 돈육의 상품으로 탈바꿈했다.

쌀누룩의 힘은 인간의 건강은 물론, 동물의 사료에도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환경을 정화하는 영역에까지 그 힘을 넓히고 있다. 인간의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쌀누룩의 발효의 효능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서 이어진다.

▶⑦로 이어짐

이인자 <하늘밥상 소금누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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