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와 ‘책 한 권 드실래요?’] 느낌은 상대에게 전염(傳染)된다
[이기철 작가와 ‘책 한 권 드실래요?’] 느낌은 상대에게 전염(傳染)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2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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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좌정묵-공감(共感)과 수수(授受)

좌정묵 시인, 김기림 시론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문학평론가 역할도 겸하고 있다. 그가 누에고치 실처럼 남긴 시(詩)도 좋지만 길게 끌고 가는 사유는 배울 점이 가득하다. 다양성을 겸비한 작가가 있으니 참 행복한 일 아닌가. 그가 남긴 글들은 애증(愛憎)이 교차하는 애정(愛情) 어린 눈길임을 의심치 않는다.

평론집, ‘공감(共感)과 수수(授受)’(제주콤, 2021년). 아껴가며 읽느라 느낌표를 남기는 일이 늦었다. 문제의식이 충만한 문장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평론이지만 무겁지는 않다. 읽힘을 통한 수긍이 저절로 따라온다.

5부로 구성된 제법 묵직한 책이다. 1부에서는 동?서양 고전에 대한 요약과 문학과 삶이라는 문제에 집중한다. 작가가 평소 가진 관점 혹은 시선이 올곧다. 2부, ‘문학과 삶의 거리’는 문학 작품에 대한 특정한 시점을 통해 현실 삶을 조명해보는 내용. 3부는 시인 등 작가 작품집을 통해 그들 삶 의미들을 살피고, 청소년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남겼다. 4부가 매우 중요하다. 문화·예술 방향성에 관한 칼럼이다. 제주도 환경과 관련된 문제, ‘4·3’ 문제를 새롭게 톺아 보고 방향성을 탐색한 글, 고향 사랑이 눈물겹다. 5부는 학위 논문을 손질해 다시 내놓았다. 金起林 詩論 硏究’는 오늘 다시 읽어도 여전히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한때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가 주장하는 ‘앙가주망’에 경도(傾倒)되었으나 이마저도 ‘아니다’며 내려놓고 ‘모른다’는 마음으로 기초부터 다시 놓는 자세를 지닌 이다.

무엇보다 고향 제주에 대한 애정은 한 치 물러섬 없이 완고하고 강고하다. 한가지 예를 들면 제주 4·3 문제를 분노로만 인식하는 일은 잘못된 감정이라고 못 박는다. 동백으로만, 핏빛만으로 한정 짓는 일에 반대한다. 명확히 그가 지닌 제주 혼에 대한 지적은 무릎 치게 만든다.

작가 원적지는 제주도 서쪽 끝 용수리다. 그곳에서 저만치 쳐다보이는 곳이 차귀도다. 화가 강요배 그림 ‘차귀 바다’를 재해석한 인식, 글 매무새가 매섭다. 그 바다를 보며 성장한 작가가 쓴 제주 속살을 본다는 일은 육지 것들이 자괴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그는 주장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단정하는 이들과도 멀리한다. 다만 가만가만 물음표 끝을 추적하는 일에 일생을 걸었다. 공감(共感)이란 타인 감정, 의견 따위에 본인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수수(授手)는 주고받는 일임일진대 책 제목이 주는 의미깊음을 책을 덮을 즈음 느꼈음을 밝혀둔다.

 

그는 오랜 병마(病魔)와 투쟁을 통해 빛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은 이다. 누구에게나 있어 죽음은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그쪽으로 가는 일 아닌가? 400편이 넘게 실린 시집, ‘여기쯤이 좋겠네’에서 한 편 꺼내 읽는다. 그 사람, 살아온 길이 보이고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다. 절제(節制)를 아는, 결코 허투루 생을 낭비하지 않은 이가 곁에 있어 안심된다. 그를 따라만 가도 생기(生氣)를 얻는 셈이니깐.

‘마음마저 모르는 때가 오거들랑/ 생명들이 재잘거리는 숲으로 가자/ 찾아가던 길을 잃고 숲길 어디쯤에서/ 지친 다리 주무르며 바람과 함께 하면/ 햇살이 내리는 눈부신 풍경으로부터/ 참 그리운 너를 만날 수 있으리니/ 사람으로 사는 일은 모르는 것이다/ 진정 사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숲의 생명과 경이를 대면하고/ 무엇인지 모르던 마음을 내려놓으면/ 그대와 나는 반드시 무엇이라든가,/ 무엇이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우스우냐/ 우리 삶이란, 오늘도 모르는 일들이며/ 내일도 모르는 경이와 신비이지 않느냐/ 다만 숲의 빛깔처럼 희망으로 살다/ 언제 때가 되면 붉은 노을이 되어/ 축복처럼 가벼이 스러지기로 하자’ <‘숲길에서 만날 수도 있으리’ 전부>

그가 지은 책으로는 시집, ‘여기쯤이 좋겠네’, 수상록, ‘너에게 또는 나에게 上·下’ 등이 있다. 현재 제주 애월읍 천덕로 모퉁이에 살고 있다. 삶을 깔끔하게 밀고 나가는 작가 성(姓)은 ‘좌’이지만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이여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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