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조건
이해의 조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2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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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어디 갔어 버나뎃」이라는 영화를 봤다. 주인공이 참 특이했다. 그녀는 언덕의 블랙베리 나무를 베어내면 그 언덕이 옆집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옆집 사람이 베어달라고 하자 기꺼이 그 나무를 베어준다. 옆집은 비가 오던 날 언덕이 무너져 봉변을 당한다. 그녀는 옆집 사람을 조롱하는 커다란 표지판도 붙여 놓는다.

영화를 보면서 학교의 상황들이 떠올랐다. 예전에 겪었던 어떤 아이들이 생각났다. 주인공의 행동이 그 아이들의 행동과 비슷했다. 상대가 상처받을 줄 알면서도 다른 친구들을 놀린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규칙을 어기고 그런 행동을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의 남편은 아내를 위해 수없이 노력한다.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아내를 설득한다. 정신과 의사는 버나뎃이 심각한 적응장애를 겪고 있으며 불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본 것이다. 남편의 설득과 의사의 과학적 분석을 접한 버나뎃은 남극으로 도망친다.

그녀는 오랜만에 자신을 찾아온 건축가 친구에게 한참 동안 이야기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시애틀을 비난하고 끊임없이 불평한다. 건축가 친구는 버나뎃의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고 나서 이야기가 끝났는지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자 그 친구는 버나뎃의 입장에서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한다. 친구는 버나뎃이 창작을 하지 못해 그런 행동을 한다고 보았다.

버나뎃의 딸은 버나뎃과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딸은 옆집 사람이 엄마를 공격할 때도 엄마 편을 들어준다. 아빠가 의학적 관점에서 엄마를 보는 그 순간에도 딸은 엄마를 믿어주고,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버나뎃도 그런 딸과는 잘 지낸다. 그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남편과 의사, 건축가 친구, 딸의 모습에서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필자의 모습들이 겹쳐졌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했을 때 아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아이들도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실제로 모든 사람과 나쁜 관계를 형성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펼쳐지는 상황을 그 아이의 눈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다른 아이들의 입장, 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교칙, 교사의 신념, 해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필자의 경험상 지켜야 하는 당위와 규칙 중심의 표준화된 관점으로만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벌은 받도록 한다. 하지만 규칙과 당위의 입장과 그 아이의 입장에서 최대한 생각해보려고 노력한다. 필자 생각에는 그게 상대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 같다.

버나뎃은 남극에서 만난 연구원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한다. 그리고 변하기 시작한다. 필자는 아이들도 결국 그렇게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

얼마 전 장문의 카톡이 왔다. 예전에 필자의 반이었는데 징계도 참 많이 받았던 아이였다. 학교에서 필자를 처음 만났을 때 너무 귀찮았고(?)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준 것에 너무나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처럼 늦게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이제는 그 아이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것 같았다. 가끔 이런 보람찬 날이 있다.

정창규 매곡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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