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海山의 얼기설기] 환향(還鄕)
[徐海山의 얼기설기] 환향(還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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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위기와 사회적 격차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서 비롯된 문제를 풀기 위한 여러 방안이 시도되고 있지만 성과는 의문부호가 따른다. 한곳으로 쏠리는 사람과 돈, 정보 등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킬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난마처럼 얽힌 실타래는 점점 꼬이고, 메아리 없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난무한다.

현안의 심각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해법은 저마다 자신의 이해와 이익이 우선이다. 남의 집값은 하락해도 괜찮지만, 나의 집값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인식의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한다. 내 자식은 서울의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사고다. ‘인 서울(in Seoul)’은 시대의 목표이자 가치가 됐다. 부동산과 교육을 움켜쥔 기득권은 기세등등이다. 가진 자의 선순환(善循環)과 없는 자의 악순환(惡循環)이 극단을 달린다.

한때는 ‘마이카(my car)’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도 중산층이야’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99%와 1%로 상징되는 빈부격차는 좁혀질 수 없는 틈새처럼 벌어졌다. 서울과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 강남 내에서도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과 극이다. 오래전, 서울의 한 초등학생이 그린 우리나라 지도가 화제가 됐었다.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시골로 표시했었다. 10년 전 일이니,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물리적 빈부의 벽은 뚜렷하지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빈부의 벽을 체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무로 데 라 베로‚본簾불리는 ‘수치(羞恥)의 벽’이 존재한다. 높이 3m, 길이 10km에 걸친 수치의 벽은 좌우 양쪽을 갈라놓았다. 판잣집의 빈민촌과 저택의 부촌을 가른 경계선이다. 벽이 없었다면 10여 분이면 오갈 거리를 둘러서 가야 하기에 2시간 넘게 걸린다. 1980년대 도시로 유입된 지방 출신 이주민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벽이 어느 순간 빈민들의 부촌 진입을 차단하는 장벽으로 둔갑했다. 부자들에게는 부와 안전을 호위하는 철옹성이고, 빈민들에게는 가난을 낙인찍는 수치의 벽인 셈이다.

페루 헌법재판소가 자유로운 통행을 막고, 이웃의 존엄성을 헤친다며 철거를 명령하면서 조만간 수치의 벽은 사라질 운명이다. 수치의 벽은 사라지겠지만, 빈부격차의 커다란 장벽은 한층 더 강고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가난을 피해 떠나온 이주민들이 가난을 벗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환향(還鄕)은 어쩌면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환향은 좋은 뜻의 금의환향(錦衣還鄕)과 나쁜 의미의 환향녀(還鄕女)가 대표적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성인 환향녀는 절개를 지키지 못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썼다. 전란의 피해자였지만,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했다.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거나, 다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비운의 삶을 살았다. 반대로 과거에 급제해 고관대작을 역임한 사람은 부와 명예라는 금빛 옷을 걸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여우도 죽을 땐 태어난 곳을 향한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은 고향을 떠난 사람이 대체로 갖는 마음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주기적으로 환향을 꿈꾸는 무리가 있다. 떠나려고 안달하는데 기어코 돌아오겠다는 사람들이다. 인구 한 명 늘리기에 혈안인 상황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원하는 결과’라는 금의(錦衣)를 입는다는 전제가 깔린다. 금의를 걸쳐야 고향에 전셋집이라도 마련하겠다는 심산이다. 고향에 뼈를 묻겠다고 맹세하고선 자의든 타의든 금의를 벗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줄행랑을 친 이들이 부지기수다. 지역소멸과 격차를 해결하겠다는, 그리고 고향을 발전시키겠다는 다짐이 공염불(空念佛)에 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徐海山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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