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포장마차촌 철거 소식을 접하고
해운대 포장마차촌 철거 소식을 접하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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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포장마차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리가 불편하고, 음식의 위생상태도 께름칙해서다. 게다가 다닥다닥 붙어 앉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옆 좌석 손님들의 넋두리까지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외가 하나 있으니, ‘해운대 포장마차’다.

해운대 포장마차에 처음 들른 때는 1987년이었다.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다닐 때였는데, 고리 원자력발전소에 출장을 가면 숙박하는 곳은 항상 해운대에 있는 모텔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복귀하면 해운대시장의 저렴한 횟집에서 저녁 겸 반주를 한 다음 해변을 거닐다가 자연스레 포장마차에 들러 나머지 부족한 알코올을 보충하곤 했다. 당시에는 소주를 잔술로도 팔았고 안주도 매우 저렴했다. 처음엔 한두 잔만 하러 들어갔다가 시원한 바닷바람과 해운대의 정취에 취해 한두 잔이 한두 병이 되는 마법을 수시로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후 한참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서울 강남에서 지인들과 술을 한잔하고 있는데 술기운 때문일까 대화 중에 나온 부산의 지인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그길로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지인을 만난 시각이 얼추 새벽 한 시였고, 함께 간 곳이 해운대 포장마차였다. 얼마를 마셨을까, 포장마차의 천막을 뚫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던 놀라운 광경은 지금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렇게 적지 않은 추억거리를 제공했던 해운대 포장마차촌이 며칠 전 영업을 종료하고 철거에 들어갔단다. 중앙일간지에 대문짝만한 기사가 실려 알게 된 사실이다. 이 글을 쓴 기자도 해운대 포장마차에 얽힌 일화가 많았었나 보다. 좋은 추억거리 하나가 지상에서 영원으로 사라졌다. 어찌 이뿐이랴. 너무나 많은 것들이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다.

여러 해 전에 과거를 따라 여행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정선 읍내의 집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철거해서 어디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고,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춘천의 양옥집은 하필 방문한 그 시점에 허물고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허망하기 이를 데 없었고, 시간이 지나니 허망함조차 흐릿해져 갔다.

지난달 고향 친구가 지역신문에 기고한 글 한 편을 보내왔다. ‘구도심으로 불리며, 주인이 떠난 수많은 집과 골목길 등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로 시작해서 그녀가 시도했던 일련의 ‘문화적 시도’를 언급하는 글이었다. 그녀가 했던 문화적 시도 중엔 ‘셋방살이와 내 집 마련: 춘천 주택 변천사’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필자에게도 자료를 요청해서 대충 생각나는 대로 살던 집의 평면도와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제공한 적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정리하고 살을 붙여서 춘천에서 전시회도 했고 책으로도 출간했다며 책 한 권을 보내왔다. 그 책의 한 페이지에 필자가 살던 양옥집의 평면도와 에피소드가 실려 있었다. 15년간 살았던 그 집의 역사는 동생이 안방에서 태어난 것을 시작으로 수많은 일화를 만들다가 작은방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로 끝나 있었다. 한동안 그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워낙 걷는 걸 좋아하는 데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대한 향수가 묻어나기도 해서 울산 중구의 구도심 이곳저곳을 구석구석 다니곤 한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대문 앞에 벽화처럼 앉아계신 시멘트 빛 얼굴의 영감님, 그 곁에 만사가 귀찮은 듯 늘어져 있는 견공(犬公), 담장 위에서 수줍게 내려다보는 나팔꽃 등 뭐하나 정겹지 않은 게 없다. 한 골목을 돌아나가면 철거를 기다리는 주택들이 나타난다. 비어있는 집마다 얼마나 많은 애환과 추억이 있었을까. 또 한 골목을 돌아나가니 가림막을 한 채 아파트가 한창 건설 중이고, 그 너머에는 막 공사를 끝낸 고층아파트가 주변을 압도하며 우뚝 서 있다.

현재 울산의 인구는 정체되어 있고, 청년 인구는 줄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분양한 아파트의 청약은 대부분 미달이었고, 이런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 한다. 그런데도 ‘구도심 재개발’이라면 무조건 구옥(舊屋)을 철거하고 초고층 아파트를 신축하는 걸 공식처럼 여기고 있다. 엄청난 비용을 들여 거대한 도심의 흉물을 만드느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구옥들을 리모델링해서 추억이란 유산(heritage) 위에 모든 연령대가 교감할 수 있는 모던(modern)한 촌(村)으로 조성하는 건 어떨까, 조심스레 화두를 던져 본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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