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 뼈살 아파트
순살 아파트, 뼈살 아파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23 20:50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물길어 오너라/ 꼭꼭 다져서 튼튼하게 짓자/ 황새가 밟아도 딴딴/ 토끼가 밟아도 딴딴….

신정 때 40대에 접어든 조카 셋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에게 한 차례 덕담이 오간 후, 자연스럽게 내 집 마련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이랬다.

“난 절대로 순살 아파트는 안 들어가. 낡아도 뼈살 아파트가 나아.”

“나도.”

“동감이야.”

필자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순살 아파트니, 뼈살 아파트니 하는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뼈대 있는 집안이란 소리는 들어봤어도 뼈 아파트니, 살 아파트니 하는 말은 처음 들어본 소리다.

알고 보니 집의 뼈대가 되는 철근을 설계대로 넣고 시공한 오래된 아파트를 가리켜 뼈 아파트라 하고 철근을 적당히 빼고 시공한 일부 신축 아파트는 살 아파트라 지칭했다. 아파트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조합해서 지어진 집이 아니던가. 그런데 철근을 적당히 빼고 짓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집은 혹한(酷寒)과 혹서(酷暑), 비바람까지 막아줄 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나아가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중요한 안식처(安息處)이다. 안식처는 말 그대로 편히 쉬는 장소를 말한다. 편히 휴식을 취하려면 무엇보다 장소가 안전해야 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장소는 휴식은커녕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할 뿐이다.

순살 아파트란 말이 생겨난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이는 곧 조합원과 계약을 맺은 원청업체가 공사를 완성하기 위해 수급인에게 업무를 맡기는 과정에서 불합리한 조건이 발생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공사비를 덜 주고 싶은 원청업자와 더 받고 싶은 하청업자 간에 일어난 불공정한 거래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결국 입주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그나마 공사가 1차 하청업체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2차·3차… 기차 레일을 달듯 길게 이어지게 되는 과정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야기된다.

대부분의 하청업체는 자본이 적고 기술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적자를 면치 못한다, 이런 열악한 조건을 가진 하청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시공 시 가장 중요한 뼈대가 되는 철근을 빼먹게 된다. 그래서 살 아파트니 뼈 아파트니 하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이다.

사람값 즉 그 사람의 가치, 인격 등이 이용도에 따라 부가가치가 붙듯이 아파트도 다르지 않다. 아파트의 가치는 위치와 면적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튼튼해야 한다. 굵은 철근을 넣을 자리에 가느다란 철근을 넣는다든지 가는 철근을 넣을 곳에 아예 철근을 빼고 짓는다면 그 아파트는 가치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 아파트의 붕괴는 인명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불신 사회라고 하는 사회적 붕괴까지 불러온다.

아이들이 두꺼비집을 다 지은 다음에는 집 주변에 도랑을 파고 근처 물웅덩이에서 물을 끌어와 작은 시내를 만들곤 한다. 이런 놀이의 과정은 물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물길을 터주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인 두꺼비집을 짓는 데도 이처럼 안전을 우선시한다. 하물며 사람이 살 집을 안전을 무시하고 부실하게 짓다니.

아파트에만 뼈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안에도 양심의 뼈가 존재한다. 우리 모두 양심의 뼈를 온전히 지킨다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

필자는 양심의 뼈가 없는 일부 건설업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당신들부터 뼈가 없는 살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아 보시지 그래?”

최정원 소설가·문학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