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 -3
[최정원 작가와 함께하는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문학의 숲길을 따라’] 울새가 노래하는 곳 -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8 20: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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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il49@naver.com

 

한번은 내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기엔 새 둥지가 있었어. 그 새는 능선 쪽에서 선을 길게 그으며 고사리밭으로 날아들곤 했어.”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던 그가 별안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앉으며 물었다.

“어떤 새 둥지였는데?”

“울새”

“울새라고? 처음 들어보는 새의 이름인데.”

“나도 처음엔 몰랐어.”

“어땠어?”

“처음 보았을 땐 참새로 착각할 정도였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참새보다는 좀 더 커 보이더라고.”

“어떻게 알았어? 그 새의 이름이 울새라는 걸.”

“응. 점식이 삼촌이 말해줬어. 울음소리가 하도 구슬프게 들린다고 해서 이름이 울새라고.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또 그 새를 가리켜 나그네새라고 부르더라고.”

“나그네새? 참, 재밌는 이름인데.”

“나는 나그네새란 이름보다 울새란 이름이 더 정겨운 거 같아.”

“동감이야.”

“그런데 말이야. 우리 어머니는 또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뭐라셨는데?”

“어머니는 새 이름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모든 영혼은 다 새소리를 내는 거라고 하는 것이야.”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가 말했다.

“모든 영혼은 다 새소리를 낸다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혼은 대체로 사람이 죽었을 때 육체로부터 독립된 정신을 의미하잖아. 물론 육신이 살았을 때도 존재하지만.”

“아유, 너무 깊이 생각지 마. 넌 뭐든지 너무 진지한 게 문제야. 우연히 울새 얘기를 하다 그런 말들이 나오게 된 것 뿐이야.”

그날 울새 얘기 말고 또 다른 얘기를 했던 것 같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처녀바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 처녀바위가 실제 존재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날 그가 처녀바위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로 처녀바위 없이는 그 골짜기의 풍경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처녀바위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처녀바위는 높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물줄기가 낮은 곳을 휘돌다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는 곳에 비스듬히 누워있다. 누가 봐도 여자의 형상이었다. 물론 이름이 처녀바위니 당연하겠지만 얼굴과 가슴 그리고 팔과 다리까지도 또렷했다. 봉긋 솟아오른 가슴은 풍만한 여인의 가슴이라기보다는 풋풋한 처녀의 가슴을 연상하게 했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던 총각들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을 하도 쓰다듬어서 반질반질해졌다. 신기하게도 처녀바위의 가랑이 사이에는 어른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으로 교묘하게 억새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억새 사이에는 이따금 녹색 도마뱀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졌다. 어느 땐 그 녹색 도마뱀이 끽끽 소리를 내기도 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그 소리는 흡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또 어찌 들으면 울새 소리 같기도 했다. 녹색 도마뱀은 위급한 상황이 닥칠 때면 처녀바위의 가랑이 사이에 나 있는 구멍 속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그러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토속적인 이야기가 그러하듯 나는 처녀바위에 대한 이야기가 독특하다든가 특별히 재미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4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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