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희의 감성수필] 수구다라니
[유서희의 감성수필] 수구다라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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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을 만났다.

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에는 ‘수구다라니,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이 전시되고 있었다. ‘수구’는 소원을 구하면 이루어진다는 뜻이며, ‘다라니’는 입으로 염송하는 주문을 뜻한다. 수구다라니는 외우는 즉시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겨 삼국시대부터 널리 유행했다.

신라 사람들도 수구다라니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다라니 중에서도 효험이 좋은 수구다라니를 최고로 여겼다. 지금까지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것만 공개되었으나, 경주 남산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의 수구다라니가 첫선을 보인 것이다. 전시를 통해 옛사람들의 기도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의미를 더한다.

익숙한 주문인 ‘수리수리 마수리’는 불교 경전인 천수경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도문으로서의 성스러움보다는 재미와 장난기가 담겨 있다. 망토를 두른 마술사가 깊숙한 모자에 마임으로 손을 움직인 뒤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수리수리 마하수리 얍!’ 기합을 넣게 한다. 잠시 뒤, 모자 속에서 비둘기가 푸드덕 날개를 치며 날고 지팡이가 꽃으로 변한다. 금방이라도 수리수리 마하수리 하고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바라는 것이 모두 이루어질 것만 같다.

사람마다 기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첫새벽에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리기도 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돌탑을 쌓기도 한다. 봄이 오면 ‘입춘대길 건양다경’이라는 입춘서를 입구에 붙이기도 한다. 점을 보기도 하고 부적을 지니기도 한다. 절대자와 초월자를 향해 신앙적으로 간구하기도 한다.

해마다 신년이 되면 새벽기도를 하러 간다.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힘든 도전이다.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을 때면 온갖 변명을 대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 싶다. 예년에는 며칠 지나면 해이해져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는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육일간의 기도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 날, 출석상 배지를 받으니 이미 소망에 움이 돋는 것 같았다.

알베르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은 기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둘도 없이 친했던 두 사람. 형편이 어렵게 되자, 한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뒤러가 그림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준다. 뒤러가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을 때 편지가 끊긴 한스를 찾아간다. 한스의 손은 뒷바라지하는 동안 거칠고 비틀어져 더 이상 글조차 쓸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옹이가 박힌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한스를 보고 그 자리에서 그린 그림이 ‘기도하는 손’이다.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음에도 친구를 위해 진심 어린 기도를 해 준 친구 덕분에 뒤러는 훌륭한 화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 적이 있던가 자문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암 투병을 이겨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재발하여 또다시 병마와 싸우고 있는 그를 만났다. 첫 만남이었지만 그의 심경이 공감되어 기도하겠다고 했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평소 내가 힘을 얻는 노랫말의 일부를 들려주며 기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를 위해 간절하게 매달려 본 적이 몇 번이었나 뉘우치게 된다.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희망의 씨앗을 심는 일인 것을.

가끔 라디오에서 ‘함께 기도해 주세요’라는 멘트를 듣는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중보기도를 요청해 온다. 마음이 모이면 기도의 힘은 커진다. 의지하고 함께 느낌으로서 내적인 풍요로움과 이해심도 넓어진다. ‘기도는 하루를 여는 아침의 열쇠이며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의 빗장’이라는 말처럼 삶의 시작과 끝을 알려 주는 길잡이이다. 나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때 어둠은 물러나고 한 줄기 빛이 되어 간절한 바람은 이루어지리라.

외우는 즉시 바라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수구다라니와의 만남을 마치고 전시관을 나왔다. 새해의 소망을 담아 주문을 걸어 본다.

“원하는 바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유서희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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