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길 칼럼] 한민족 통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병길 칼럼] 한민족 통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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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 대전현충원을 방문한 뒤에 대전시립미술관에 들렀다. 마침 실향민 화가 이동표 그림 전시회가 있었다. 70년 넘게 실향민으로 살아온 분이 얼마나 고향에 가고 싶은지, 통일을 얼마나 절실히 바라는지, 그림으로 구구절절 표현하였다. 통일이 이루어진 날을 그린 그림에 모든 사람이 활짝 웃는 모습이 참으로 좋았다.

최근 한반도에서 통일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 진행되었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어려움을 확인하고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 실험을 통해 무력 강국의 길을 갔다. 그 결과 핵무기가 완성되고, 다양한 발사체 실험에 성공하고, 인공위성까지 지구 궤도에 안착시켰다.

북한은 이제까지 민족통일, 남북통일을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업으로 생각하고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 정책을 추진해 왔다. 1 민족, 1 국가, 2 제도, 2 정부의 연방제를 추구하는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이었다. 하지만 북한의 인식은 최근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이제까지 ‘남쪽’이나 ‘남한’이라고 불렀던 명칭을 ‘대한민국’이란 국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반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국가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객관적 사실을 북한 주민이나 남한에 인식시키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엄청난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역사적 순간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북쪽과 남쪽, 북한과 남한이란 표현은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국가를 기반으로 한 사고방식이다. 북한이 남한의 정식 국호를 사용한 것은,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있음을 공식 천명한 것이다. 하나의 국가는 통일을 지향하지만, 두 개의 국가는 이해관계를 가진 국가관계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국가를 침략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북한이 연방제 통일정책을 포기한 것은 역사적 과정의 결과이지만, 북한의 주장처럼 대화하는 과정에 문재인 정부가 군사력을 강화한 탓도 있다. 또 현재의 남한 정부에서 강공책을 사용한 것도 한 이유이다. 이는 민족 통일을 추구하던 시대에서 적대적 남북 국가 시대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이동표 화가처럼 통일을 바라는 세대가 많았다. 하지만 점점 통일 교육은 약화하고, 남북의 강경 대치는 심각해지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국가관계로의 전환을 이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적 시간이 돌아오고 있다. 남한 정부에서 통일부를 축소, 해체하듯이 북한도 대남 기구를 정리, 개편하고 있다. 남북의 강경 대치는 서로 불통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 오늘날 민족은 사라지고 있다. 한때는 ‘단일민족’과 ‘백의민족’을 강조하였다. 북한과 달리 남한 사회는 점점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변화되면서 전통적 한민족의 개념은 사라졌다. 민족 통일의 개념도 희박해지고 있다. 아니 통일에 관심은 없고 국가적 관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

국가와 국가의 관계로 바뀌고 있는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현실이다. 유엔에서도 독립 국가로 가입하여 활동 중이다. 민족 통일이란 대의명분에 두 개의 나라임을 애써 외면해 온 것이 사실이다. 북한발 ‘대한민국’이 언젠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호칭을 남한 정부도 사용하게 할 것이다. 현실을 인정한 상황에서 정책 수립이 요구될 것이다. 먼저 남북한이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을 하고, 1992년에 합의한 남북한 상호체제인정과 상호불가침, 남북한 교류 및 협력 확대를 담고 있는 ‘남북한 기본합의서’가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적대적 국가관계로 돌아서는 상황에서 결정적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지금 민족 통일이 사라지는 역사적 순간에 살고 있다. 남북을 잇는 민족이 사라지고, 국가만 남는다면 당분간 남북 관계는 냉전에 휩싸일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 불안한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이병길 (작가, 항일독립운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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