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채구에 물들다 ①
구채구에 물들다 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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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발생이 세상에 알려지기 일주일 전쯤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행사 밴드에서 중국 성도(成都) 구채구 (주자이거우) 원정대 공고를 봤다. 순간 무조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여행할 때 그 옥색 물빛에 하염없이 감탄했는데, 지나가는 다른 일행이 중국 구채구와 비교가 안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뒤부터 구채구 여행을 버킷 리스트에 넣고 벼르고 있었다. 원정대는 여행사와 항공사의 팸투어 덕분에 저렴한 가격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4박 6일 일정에 인천 출발이라 부산공항으로 가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3시간 50분 후 성도공항에 도착했다. 착륙 직전 하늘에서 본 성도는 큰 도시 같았다. 실제 우리나라 면적의 5배 정도이고 인구는 8천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물이 좋아 술 종류가 4천가지나 되고 우량예 고량주와 수정방이 나오는 고장이라는 말에 옆 사람들은 좋아했다. 시선(詩仙)인 이태백(李太白, 李白)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술꾼을 칭하는 말 중에 술 酒(주) 자를 앞에 넣어 ‘주태백이’라고도 한다. 동네 술꾼들을 그렇게 부르는 걸 어릴 때 들어본 적이 있다. 이태백이 이곳에서 태어나 술을 좋아했는지 술의 고장이라 이백이 술꾼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이치이니 우연치고 재미있다.

사천성(四川省, 쓰촨성)의 성도(成都, 청두)는 일찍이 삼국시대 때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수도로,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간직한 도시이다. 예부터 비옥한 평원에 강과 산, 들녘에서 나는 물자가 풍부하여 ‘하늘이 내린 풍요의 땅’이라고 했다. 이런 천혜의 자연은 술과 사천요리, 차를 만들어 내어 예나 지금이나 유유자적한 일상이 펼쳐진다.

거리에 즐비한 오천여 개의 노천 찻집은 이러한 청두 특유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속에 젖어 들다가 일행을 놓쳐 국제 미아가 될 뻔한 일도 있었다. 관착항자 거리에서 차를 얻어 마시고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일행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십 분가량 헤맨 끝에 겨우 만났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진땀이 난다.

청두는 낮은 구릉과 산에 둘러싸인 분지에 있어 여름은 상당히 덥고 긴 편이다. 습기까지 많아 힘든 날씨로 여름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겨울은 최저 기온이 영하 5~6℃ 수준에 그치지만 높은 습도의 영향으로 더 춥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남쪽은 여행할 만하다고 해서 용기를 냈다.

사계절 내내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도시로 맑은 하늘을 보기가 힘들어 중국에서 가장 일조시간이 적은 곳 중 한 곳이다. 익히 알고 있는 런던보다도 일조시간이 짧다. 그래서 웃기는 말로 ‘사천의 개는 해를 보고 짖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린 옷을 엄청 많이 입어서 그런지 추운 줄 몰랐다.

꽃이 만개한 봄의 청두는 무척 아름답다고 한다. 해마다 봄이면 전원마을인 룽취안(?泉)에서 자란 약 1천700여만 그루의 복숭아나무에서 피어난 선홍빛 복사꽃이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우리도 봄의 길목에 갔으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4월쯤 되면 복사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그쯤에 자두꽃, 살구꽃이 앞다투어 핀다. 나는 복사꽃을 좋아한다. 속은 짙다 못해 검붉은 색에서 꽃잎은 끝으로 갈수록 농도가 점점 옅어져도 벚꽃보다 진하고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색감 못지않게 꽃잎도 빳빳해 너무나 당당하게 보인다.

▶②로 이어짐

김윤경 작가, 여행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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