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 일상생활에서도 위험성 평가
[안전파수꾼] 일상생활에서도 위험성 평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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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미국의 한 패스트푸드점 드라이브 스루에서 뜨거운 커피를 건네받고 운전하다가 다리에 쏟는 바람에 화상을 입은 사고가 있었다. 재해자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회사는 당시 60만 달러 이상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한다. 이 사고를 계기로 커피 온도는 80도에서 60도로 낮춰졌고, ‘커피가 뜨거우므로 조심하라’는 경고 문구를 컵에 표기하게 된다. 거액의 손해배상금 판결은, 커피의 맛을 더 잘 내기 위해 업계 기준보다 커피 온도를 올림으로써 화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았고, 사고 발생 전 10년 동안 700여명의 피해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에는 ‘안전을 위해 카트에 가급적 유아 및 어린이 탑승을 자제하기 바란다’는 주의 표지를 붙이고, 에스컬레이터 벽에는 ‘주행 중에는 안전 난간을 잡아야 한다’는 표지판을 부착한 것도 사업장에서 인지한 위험성을 일반인에게 미리 알리는 성격인 셈이다. 이를 책임 회피성이라고 면박할 수도 있으나, 이미 인지된 위험요인을 공지함으로써 시설물을 사용하는 개개인이 자신의 결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유리로 된 여닫이 출입문 안쪽에 ‘당기시오’라는 팻말이 부착되어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이를 무시하고 확 밀어서 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넘어져 결국 사망에 이른 사고가 2020년에 있었다. 당시 유리문에는 불투명 시트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법원에서는 ‘당기라’는 지시문을 따르지 않았고, 출입문이 투명하지 않아도 밖에서 피해자가 서성이는 실루엣이 비교적 뚜렷해서 조금만 주의했다면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유죄로 판결했다. 일상 생활공간에서도 주변 상황을 인식하면서 안전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편으론 개인의 의지에 의존하는 관리적인 접근방식으로, ‘당기시오’ 팻말에 더해 유리문 회전반경을 바닥면에 표시했다면 위험한 영역을 더 잘 인지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식은, ‘당기시오’보다는 문이 당기는 방향으로만 열리도록 미리 설비 제한을 해 놓는 것이다.

계단으로 통하는 출입문에는 ‘방화문이므로 항상 닫아야 한다’는 주의 안내문이 붙어 있음에도, 상당수는 문이 활짝 열린 상태를 유지하도록 장애물로 고정해 놓고 있다. 안전상의 이유로 닫힘 상태를 유지하도록 공지하는데도 따르지 않는 것은, 닫아 놓으면 어둡거나 답답하다는 등 현실적인 불편함을 피하려는 이유다. 건물을 설계할 때 세심한 위험성 분석을 통해 사용자가 그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보완한다면, 안전성과 편리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접근방식이 된다.

사업장에서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해당 작업자들이 모두 모여 당일 수행해야 하는 작업에 대해 작업 여건과 방법 등을 다 같이 이해하는 툴박스(Tool Box) 미팅을 한다. 안전보건공단에서 강조하는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다. 조직적인 위험성평가를 통해 인지된 위험요인과 함께, 표준환경에서는 인지되지 않았던 잠재적인 위험요인을 찾아 사전에 안전하게 조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안전교육을 할 때마다 “바쁜데 그렇게 할 여유가 없다”, “이 작업장은 내가 훤히 알고 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너무나 익숙한 작업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어색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변화’라는 요소를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이 2010년부터 “위험을 보는 것이 안전의 시작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개개인의 위험성 인지역량을 강조하는 안전문화를 조성해 왔다. 사업장에서는 표준환경, 표준작업에서 파악된 위험요인들을 공지하기 위해 각종 안전보건표지를 부착해 놓는다. 따라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 안전보건표지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표준환경 및 표준작업과 달라진 요인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평상시와 다른 위험요인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위험성평가를 일상화하자는 것이다. 근로자에게 최고의 복지는 무재해임을 다시 한번 명심하자.

최준환 울산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전기안전기술사·산업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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