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이야기] ‘울주 반구천 일원’에 漢詩 문학관을 짓자
[물길 이야기] ‘울주 반구천 일원’에 漢詩 문학관을 짓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5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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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의 지리가 가장 아름답다(慶尙道地理最佳)’. 이중환의 택리지 팔도론 경상도편의 첫 문장이다. 지금의 경상도는 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낙남정맥 등 산줄기와 낙동강, 금호강, 남강, 태화강 등 물줄기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산수를 자아내고 있다. 산줄기들이 풀어놓은 2천여 개의 크고 작은 물길이 흘러가고 있다. 낙동강은 가장 큰 물줄기이다. 본류와 지류에 댐과 보, 광역상수도 등 수자원시설을 세웠다. 부산, 대구, 창원, 구미, 포항, 거제 등 대도시와 산업도시에 물을 주고 있다. 자연과 문명,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다. 수많은 물길 이야기가 흘렀고 흘러가고 흐를 것이다.

영남알프스의 산줄기가 풀어놓은 태화강의 물줄기는 대곡댐과 사연댐 사이의 명승을 그려내고 있다. 고려말 정몽주가 반구대를 유람한 이래 조선시대 선비들의 명소였고, 이제는 전국에서 세계에서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핫플이다.

천전리암각화와 반구대암각화 사이의 물숲길은 한 폭의 그림정원, 소리정원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3대 정원(전남 완도 부용동, 전남 담양 소쇄원, 경북 영양 서석지 등)에 비하면 특이하다. 20리 정도를 걸으면서 신석기부터 현대까지의 여러 시대 문화를 동시에 배우고 즐길 수 있다.

암각화로 가는 길에 ‘반구대 바위’가 솟아 있다. 물이 가득 차면 누워있는 거북 모양(盤龜·반구)이 뚜렷하다. 반구대 바위 건너에 집청정이 있다. 집청정(集淸亭)은 1713년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 1673~1737)가 건립했다. 이곳에 귀양 온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기렸다. 벗들과 교유하고 수양했다. 자연을 즐기려는 선비의 바람을 한껏 담고 있다. 맑음이 모이는 정자 集淸亭(집청정). 물소리를 듣는 집 聽流軒(청류헌), 우뚝 솟는 산을 마주하는 곳 對峙樓(대치루) 등이 그런 것들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활달하고 즐거워한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고요하며 오래 산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라는 공자의 말씀(-논어 옹야)이 생생하다.

전국에 있던 많은 선비들이 이곳에 왔다. 집청정처럼 맑음을 구했고(求淸), 모였고(集淸), 얻었다(得淸). 그리고 시서화(詩書畵)를 남겼다. 200여명이 지은 400여 수의 한시(漢詩)가 남았다. 집청정 사람들이 대를 이어 간직했다. ‘역주 집청정 시집’(譯註 集淸亭 詩集)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이 시집(詩集)은 집청정을 찾았던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남긴 작품과 당시의 풍경이 정자와 함께 잘 남아 있어서 역사적, 문학적 가치가 높다.

지금 집청정에서 문화체험 프로그램(다도, 민화, 궁도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집청정의 핵심은 교류이고 교류는 한시를 통해서 했다는 것에 착안하여 漢詩(옛노래)를 활용했으면 한다. 한시체험(추구, 백년초해), 한시 낭독 등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울산시와 울산대학교, 울산대곡박물관, Kwater 등이 협력하여 한시문학관 또는 한시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으면 한다. 전국에서 특정인(윤선도, 임호 등)을 기리면서 그들의 한시 몇 수를 전시하는 서원, 기념관이 제법 많다.

명승 울주 반구천 일원을 ‘전국 4대 정원’이라 명명하고, 도심의 태화강국가정원과 물숲의 노래(漢詩)정원과 연계하여 한시문학관이나 한시박물관을 건립했으면 한다. 지금은 추위가 한창이지만 봄을 읊은 정몽주의 옛노래를 부르자. 노래에 그림이 있고 소리가 있네(詩中有?有聲).

봄비가 가늘어 방울도 맺지 못하는데 밤중에 약간 소리가 나는 듯했네. 눈 녹아 남쪽 개울에 물이 불었거니 풀싹은 이미 얼마나 돋았는고(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草芽多少生·초아다소생)*春興·춘흥, 鄭夢周·정몽주

◆ 글쓴이 소개

시냇물 윤원기는 대전에서 나서 연세대를 다녔다. 한국수자원공사에서 35년간 근무했다. 물 문화에 관심이 많아, 안동대 한문학과 대학원, 한국고전번역원 등과 교류하여 한문학을 배우고 있다.

근무지역마다 책자나 칼럼을 써왔다. 호는 시냇물(水涓), 詩냇물(詩涓), 물 얘기꾼은 副캐이다. ‘물은 세상일이요, 술은 사람일이네’라는 짧은 시로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주요 저서로 <구미를 말하다 구미를 느끼다>, <제주보다 큰 거제 이야기>, <말 글 물길 이야기>, <청송처럼>, <수류 안동> 등 20여 권이 있다. 칼럼으로는 울산제일일보-‘울산 물길 이야기’, 뉴스앤거제- ‘거제 물 이야기’ 등이 있다.

윤원기 물 얘기꾼·漢詩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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