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과 화성행궁 탐방기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탐방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1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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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과 성곽의 꽃인 수원화성을 둘러보았다. 탐방 계획이 잡히자 행궁의 꽃이라는 화성행궁과 수원화성박물관도 보고 싶었다. 도록으로만 보았던 정조 때 장원급제한 질암 최벽(1762-1813)의 유품이 그곳에 기탁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원은 정조가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효를 행하기 위해 만든 도시이다. 수원화성은 아버지의 묘역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후 1796년 9월 완공되었다. 우리 일행은 2002년에 중심권역 복원을 마친 지금의 모습을 둘러본 것이다.

길이 5.74km의 성곽을 처음 걸으면서 기분이 참 좋았다. 복원은 완벽했고,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시선이 아주 편안했다. 조선 후기 성곽임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완벽한 복원 덕분이다. 그 복원은 성곽의 모든 것을 기록한 <화성성역의궤>가 존재했기에 가능했다. 이 ‘의궤’에 그려진 각종 시설물의 도설(圖說)은 성곽 복원에 적극 활용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은 성곽 조성 당시의 의궤들과 화성행궁 행차 기록화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원화성은 완벽한 계획에 의한 조선의 제2수도였다. 정조의 원대한 포부가 담긴 곳으로, 수도 남쪽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축성되었다. 임금의 효심이 축성의 근본 원인이지만 강력한 왕도정치 실현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당쟁에 휘말려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의 능침을 1789년에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산(花山)으로 옮겼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로 이름이 높여졌고, ‘수은묘’에서 ‘영우원’으로 바뀌었다.

화산으로 이장하고는 ‘현륭원’이 되었다. 화산은 현재 화성시 안녕동에 있다. 이곳의 묘역 관리를 위해 부근에 있던 수원 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지금의 수원화성이 축성된 것이다. 1899년에 ‘장조’로 추존되면서 혜경궁 홍씨(1735-1816)도 헌경왕후로 추존, 양위의 합장묘는 ‘융릉’이 되었다. 아들 정조(1752-1800)가 묻힌 건릉도 융릉 왼쪽에 있어서 지금은 묘역 전체를 ‘융건릉’으로 부른다. 사도세자의 혈손은 외척들의 처절한 핍박 탓으로 철종에서 절손되었다.

화성은 1794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 9월 초에 완공했다. 원래의 계획보다 훨씬 앞당겨 32개월 만에 완공한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수원화성의 자랑은 적을 정찰하고 공격할 수 있는 ‘공심돈(空心墩)’이다. 공심돈 설계는 현장감독이었던 이유경의 강한 의지로 추진되었다. 발주자는 조선 22대 왕인 정조이고 기본설계자는 정약용인데, 당대 최고의 실학자였던 유형원의 도움을 받았다. 성곽 조성 책임자는 영의정인 채제공이고, 수원유수인 조심태의 공도 크다.

수원화성 내의 화성행궁도 둘러보았다. 행궁에는 비상시에 사용한 강화행궁, 의주행궁, 남한산성행궁과 휴양을 목적으로 설치된 온양행궁, 왕이 능원(陵園)을 참배할 때 머물던 화성행궁이 있다. 화성행궁은 행궁 중의 꽃이라고 할 만큼 규모와 격식을 갖추었다. 정조는 1790년 2월부터 1800년 1월까지 12차에 걸쳐 능행(陵幸)을 하였으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많은 행사를 열었다. 그 뒤 순조, 헌종, 고종 등 역대 왕들도 이곳 화성행궁에 머물렀다.

가장 주목받는 화성행궁 행차는 1795년 윤2월 9일부터 7박 8일간의 일정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조야 백관 등 수행원 6천여명과 백릿길(56km)을 행차했다. 그 규모는 미리 그려놓은 <반차도>만 보더라도 행렬 순서와 위치를 알 수 있다. 길이 총 16m에 1천779명의 인물과 말 779필이 그려져 있다. 실제 행렬 길이는 약 1km 정도로 추정한다. 정조 등극 20주년이 되는 해의 이 행차는 많은 의미를 담았다. 이 모든 것을 다 정조가 기획하고, 정약용이 연출하였다.

행차와 환궁 이틀씩, 나흘을 빼면 행사 일정은 나흘간이었다. 사흘째는 과거시험과 회갑연 예행연습, 나흘째는 현륭원 참배와 주야간 군사훈련, 닷새째는 혜경궁홍씨 회갑잔치, 엿새째는 주민 쌀 배급과 경로잔치였다. 이 모든 행사는 <원행을묘정리의궤>라는 책에 담아놓았다. 또한 왕의 일행이 행궁에 이르기까지의 행렬을 그린 <수원행행반차도>, 행사 장면을 담은 8폭의 병풍 그림인 <화성원행도> 등 각종 기록화는 도화서 화원(畵員) 김홍도 사단이 그렸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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