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추운 겨울날, 뜨끈한 국물의 참맛
[아침향기] 추운 겨울날, 뜨끈한 국물의 참맛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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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도 낮은데 바람까지 분다. 오늘 같은 날 ‘어떤 음식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답은 금방 나온다. “뜨끈한 국물이 최고지!” 핸드폰을 꺼내 근처 맛집을 검색한다. 식당 분위기와 리뷰를 읽어 보다가 국물이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찾아간 음식점의 테이블마다 올려진 냄비에서는 국물이 끓고,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내부 풍경만으로도 차가운 몸이 녹는 듯하다. 푸짐하고 얼큰한 국물에 명란과 곤이가 듬뿍 들어간 동태탕!

춥고 배고프던 참이라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왔다. 그런데 속이 불편하다. 급하게 먹은 탓인지, 국물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갔는지 입안이 텁텁하고 감미료의 어설픈 단맛이 자꾸만 달라붙는다. 소문난 맛집으로 알고 어렵게 찾아갔지만, 음식 고유의 깊은 손맛보다는 화학조미료로 가벼운 맛을 낸 음식을 먹고 실망할 때가 있다. 국물 요리는 육수를 잘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진하면서 깔끔한 육수를 내려면 좋은 재료가 기본이다.

고기 육수는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사용하여 오랫동안 우려내야 깔끔하고 맛이 깊다. 시락된장국과 콩나물국을 끓일 때는 멸치와 다시마, 야채를 이용한 육수의 맛이 비결이다. 하지만 맛있는 육수를 우려내려면 충분한 요리시간도 필요하고, 건더기를 건져내 버리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서 간편 포장된 육수팩이 등장한 지 오래다. 한 봉지를 넣고 국물을 우려내는 간편함을 위한 상품이다. 최근에는 초간편 육수 요리를 위한 코인 육수까지 등장했다. 동그란 알약처럼 생긴 동전 육수는 멸치, 해물, 소고기 등 다양한 맛과 편리함으로 주부들에게 인기다. 입소문을 듣고 사용했지만, 평소 길들여진 입맛과는 차이가 있다. 앞으로도 맛있는 요리를 위해선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해야겠다.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국과 찌개, 그리고 탕과 전골 음식! 국물이 없는 밥상은 우리 밥상이 아니다. 재료도 다양하고 종류도 많다. 국물은 춥고 더운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 추운 날엔 뜨끈해서 좋고, 더운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뜨거운 국물을 시원하게 즐긴다. 한국인을 대표하는 지성으로 통하는 이어령 선생은 “국물은 한국의 맛을 해독하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다. 서양의 요리 코드가 ‘고체-액체’ ‘건식-습식’의 대립 항이라면, 한국의 요리 코드는 이 대립의 경계를 없애고 음식의 건더기와 국물을 함께 먹는 혼합 체계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마시는 것과 먹는 것을 별개로 하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밥과 국, 건더기와 혼합된 한국의 국물 문화를 ‘음식(飮食)’이라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기를 출산한 산모가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은 미역국이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도 미역국의 국물을 모유를 통해 전달받는다. 제사를 지낼 때는 정성껏 차린 제사상에 지방을 막론하고 탕국을 올린다. 이렇듯 삶의 시작과 끝까지 우리의 입맛에 국물이 스며들어 있다.

내게 국물은 따뜻한 그리움이다. 특히 추운 겨울에 엄마가 끓여 주시던 진한 곰국의 맛! 오랫동안 우려낸 국물과 부드럽게 삶아진 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을 때의 감동. 흔한 김치콩나물국에도 참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려 주던 그 정성에 아직도 고소한 맛이 아른거린다. 진정한 맛은 입맛보다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있다.

국물은 비워야 채우는 삶의 미학을 깨닫게 한다. 뚝배기에 담긴 국물을 두 손으로 들고 막 남겨진 국물을 깨끗하게 비울 때, 그 후련함과 만족감이란! 대부분의 국물 요리는 따뜻하게 먹어야 제맛이다. 뜨끈하고 얼큰한 국물에 흰 쌀밥을 말아먹으면 비웠던 속이 차면서 제대로 먹었다는 포만감이 든다. 또한. 국물 요리는 넉넉함의 미덕이 있다. 국물을 제대로 우려내기 위해서는 적은 양보다 넉넉한 양을 끓이게 된다. 데워 먹다 보면 마지막에 양이 모자랄 때가 있다. 그럴 때 물을 부어 간을 맞추면, 공동체가 함께 걱정 없이 나눠 먹을 수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해 아쉬운 사람에게,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자!” 대신에 “따끈한 국밥 한 그릇 하자!”고 한다. 비워야 채우는 삶, 넉넉함의 미덕을 함께 나누는 국물의 참맛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싶은 이유다. 갑진년에는 하루하루 뜨끈한 국물처럼 보내련다.

김미정 ㈜케이연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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