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通의 우리 술 이야기] 백제를 닮고 싶은 술, 한산 소곡주 ④
[心通의 우리 술 이야기] 백제를 닮고 싶은 술, 한산 소곡주 ④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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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고고학자들이 카스피해 부근의 조지아(그루지아)에서 8천 년 전의 토기를 발굴했다. 학자들은 이 토기에 묻어있던 물질이 포도에 많이 들어있는 타르타르산(주석산)임을 확인했다. 신석기인이 와인을 이 토기에 담았던 것이다. 이 토기의 발견으로 와인의 역사는 8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르게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전에 술을 빚어 마신 흔적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연구팀이 중국에서 발견한 일이다. 이들은 1999년 중국 허난성(河南城) 자후(賈湖)의 유적지에서 여러 유물과 함께 도기 파편들을 발견했다. 이 도기들을 연구한 결과 포도와 산사나무 열매의 타르타르산과 꿀을 사용한 밀랍의 흔적, 쌀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식물성 스테롤이 함유된 것을 밝혀졌는데 이들 모두 술을 제조한 흔적이라고 한다. 자후 유적지가 9천여년 전의 유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밝혀진 세계 최초의 술은 중국 자후 지방의 쌀로 빚은 술이라는 말이 된다.

한산 소곡주는 백제 시대부터 빚어온 술로 1천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百濟本記) 다루왕 11년(38년)에는 ‘추곡이 여물지 않아 백성들에게 술빚는 것을 금지시켰다’는 기록과 백제 무왕(635)이 신하들과 고란사 부근에서 연회를 즐기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는 기록, 그리고 의자왕(656)이 궁녀들을 데리고 향락에 빠져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기록들이 있다. 위 기록들과 백제의 술을 일본에 전한 ‘수수허리’(일본어로 すすこり·스스코리)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이때 마신 술이 소곡주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럼에도 백제 시대에 소곡주를 빚었다는 기록은 없다. 그때 마신 술이 소곡주일 거라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다.

백제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그중에는 술을 담았음직한, 술잔으로 사용했을 법한 도기들이 많다. 우리도 조지아 유적이나 자후 유적 조사와 같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백제의 도기에서 한산 소곡주의 성분을 발견했다면 어떠했을까. 그러한 노력으로 다루왕에서 수수허리로, 그리고 무왕과 의자왕, 조선의 과거시험 보는 양반까지 관통하는 한산 소곡주의 스토리를 완성하는 연구가 없어 너무 아쉽다. 그러기에 정부가 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소식이 안타깝기만 하다.

한산 소곡주는 조선 시대에 과거 보러 가던 지방 선비들을 주저앉게 했던 앉은뱅이 술이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조선 시대에 편찬된 고조리서에는 한산 소곡주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소곡주가 최초로 소개된 고조리서는 1460년대에 왕실 어의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山家要錄)>이다. 산가요록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고조리서인데, 이곳에 소곡주가 실려 있다는 것은 이전에도 소곡주를 빚어 마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일반적으로 전통주의 누룩은 들어가는 쌀 양의 10% 정도를 넣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산가요록>에 기록된 소곡주 레시피는 쌀량 15말 2되에 누룩 1말로 술을 빚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일반적 전통주 누룩 양의 2/3 정도로, 누룩을 적게 사용하여 술을 빚는, 말 그대로 소곡주(少麯酒)인 것이다. <산가요록> 외에도 다양한 고조리서에 적힌 소곡주의 누룩 양은 일반적 전통주에 들어가는 누룩의 2/3~1/3 정도다. 소곡주의 이름에 걸맞은 레시피인 셈이다.

‘적을 소(少)’가 아닌 작을 소(小)’를 사용한 고문헌도 상당하다. <역주방문(歷酒方文)>에는 ‘小曲酒’로 기재하면서 ‘쌀 15말(150되)에 누룩 5되’를 사용한다고 하여 일반적 레시피에 비해 들어가는 누룩량이 1/3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주방문 小曲酒의 본질은 누룩을 적게 쓰는 少麯酒(소곡주)의 음만 빌려 小曲酒로 썼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을 소(小)’를 쓴 소곡주가 있다고 하여 소곡주의 이름을 두고 시비 걸 일은 아니라고 본다. (⑤로 이어짐)

심규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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