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왕의 평생교육 Letter] 과학기술의 혁신과 학교교육
[신기왕의 평생교육 Letter] 과학기술의 혁신과 학교교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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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인류의 문명만큼 오래되었지만 원래 교육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교육은 부모와 스승, 동료로부터 배우는 것이었다. 부모는 집안의 전통과 가치를 자식들에게 전수하고 실천했다. 교육의 주제는 인간의 삶 전체였고 스승은 제자와 밀착되어 있었다. 동료는 경쟁자가 아니라 함께 학습하고 고락을 같이하는 동지였다.

이러한 교육 형태는 산업사회에 필요한 인력의 대량 공급 필요성이 생기면서 집단으로 모여 표준화된 교육과정을 배우는 지금의 학교교육 체계로 탈바꿈했다. 교육이 가내수공업 단계에서 자동화 설비를 갖춘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변화한 것이다.

학교체계의 기본적 설계 방향은 산업사회에서 필요한 인적자원을 효율적으로 양성하는 것이었다. 교육의 효율성과 시장가치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교교육 체제는 표준화된 교육과정과 획일적 교육을 통한 인적자원의 양산이 특징이었다. 표준화된 교육은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준(standard)을 국가가 단계별로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기 다른 인간을 표준화된 인간으로 대량으로 찍어내는 학습공장의 모습을 담은 삽화는 이러한 산업사회의 교육을 잘 묘사하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학교가 효율성만 강조하면서 학생 각자의 개성이 무시되고 교육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난 교육이 성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를 계기로 학생을 학교교육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인식하고 학생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는 교육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의 ‘자유학교 운동’과 우리나라의 ‘참교육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학교교육의 기본 틀은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고한 학교체제는 고도화된 산업사회의 산물인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의 혁신은 학습자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학습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개별 학습자의 오류를 감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제공하고 있다. 나아가 최근 출현한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학습자 스스로 해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도록 돕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맞춤형 학습을 설계하고 교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단계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학생이 강제로 학교에 가지 않아도 원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더 이상 학교와 교사에게 지배될 필요가 없게 된 시대가 온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에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문제도 과학기술 혁신이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정보통신기술이 미래의 학교교육에 긍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학교현장에서 챗GPT나 생성형 AI를 활용한 수업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고, 교육부는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학교체제에 대한 불만과 위기가 광범위하게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학교시스템은 탄탄한 제도와 국가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학교시스템의 대표적 장점이었던 교육의 효율성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학교교육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혁신은 집단적 교육에서 개인화된 교육으로, 가르치는 교육에서 스스로 배우는 교육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교육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학교교육 체제의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한 시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신기왕 교육학박사,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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