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소년시대’ 80년대 그 시절, 충남 부여에선..
드라마 ‘소년시대’ 80년대 그 시절, 충남 부여에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4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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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온통 얻어터지는 일이라는 건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대략 느낌이 온다. 친구들과 싸우면서 얻어터지고, 숙제를 안 했다고 선생님에게 매를 맞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진 쭉 그렇게 간다. 우리 땐 그랬다.

그러다 어렵사리 대학을 들어가거나 바로 사회로 진출하면 물리적으로 누군가에게 맞을 일이 거의 없어지는 만큼 얻어터지는 일에선 이제 해방됐다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꼭 그렇진 않더라. 그때부터는 마음이 얻어터지기 시작하더라는 것. 부모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비로소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그 무렵, 대다수 사람들은 첫사랑에 얻어터지면서 어마어마한 충격에 휩싸인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치고받고 싸울 때처럼 차라리 한대 처맞고 말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 아닐까.

허나 이별의 아픔도 잠시뿐, 생애 처음 겪어보는 커다란 즐거움 앞에 첫사랑에 실패하고 나면 이젠 외로움에 처맞기 시작한다. 비슷한 감정으로 지루함이나 지겨움, 혹은 심심함에 얻어터지기도 하고, 얽히고설킨 인관관계에서 상처받곤 한다. 그러다 하는 일까지 잘 안돼 실패에 얻어터지다 보면 어느덧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다. 성공을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다. 잠시도 가만 있질 못하는 마음은 결국 지루함(권태)에 얻어맞게 되니까.

이쯤 되면 사는 게 이젠 별거 없어지는데 그때가 대략 40,50대는 족히 돼야겠지만 <소년시대>에서 주인공 병태(임시완)는 너무 일찍 그걸 알아버렸다. 마지막회에서 일진 두목인 경태(이시우)와 맞짱을 뜨다 계속 얻어터지며 병태가 말한다. “한 개도 안 아프다니께? 어차피 지난주에도 맞고, 저번 달에도 맞고, 맨날 맞고 사는 인생인디 뭐가 별다를 게 있겄어?”

그랬다. 원래 병태는 단 하루만이라도 친구들에게 안 맞고 사는 게 삶의 목표인 찌질이였다. 그런 병태가 충남 아산시 온양에서 부여 농고로 전학을 오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때마침 아산시를 주름잡았던 최고의 싸움꾼 경태도 부여 농고로 전학을 오면서 그의 인생은 역전된다.

‘아산 백호’ 경태가 뜻밖의 사고로 며칠 입원해 있는 사이 부여 농고 일진 친구들이 병태를 경태로 오해해버린 것. 하여 온양에선 매일 맞고 살았던 병태는 가짜 아산 백호 행세를 하면서 단숨에 부여 농고 일진 짱이 되어 온갖 호사를 누리게 된다. 부여 소피 마르소로 불렸던 선화(강혜원)의 사랑까지 얻은 병태. 하지만 진짜 아산 백호가 퇴원해 정체가 들통나면서 죽기 직전까지 처맞으며 진짜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헌데 진짜 아산 백호 경태는 진짜 나쁜 놈이었다. 친구들에게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돈을 뜯어 냈던 것. 그런 그의 폭정은 병태가 일진 짱으로 사기치고 다녔을 때와 달리 학교 친구들로부터 반감을 사게 됐고, 결국 병태는 각성을 통해 친구들과 힘을 합쳐 폭군 경태에 맞서게 된다. 사실 경태가 며칠 동안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했던 건 병태의 박치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병태가 내리막길에서 사고로 경태와 박치기를 해버린 것. 그랬거나 말거나 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년시대>는 이렇듯 독재자에 맞서 싸우는 피지배층의 이야기다. 그 과정은 아래에서 시작돼 위를 바꾸는 일종의 ‘혁명’이었고, 87년 6월 항쟁을 떠올리게 한다. 해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가 이문열의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도 적잖게 겹친다. 다만 충청도 사투리가 좀 더 구수할 뿐.

사실 <소년시대>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늘 맞고 사는 병태가 처한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충청도 사투리였다. 불쌍해 죽것는디 말만 하면 웃긴겨. 어느 시점이 되니까 아픈데도 그렇게 웃긴 병태가 무지 강해 보이기까지 하더라. 그건 병태 개인의 혁명이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 다들 덕담을 주고받느라 바쁘다. 하지만 한두 해 속아본 것도 아니고, 내 장담하는데 올 한해도 나나 당신이나 주로 얻어터지면서 살 게 뻔하다. ‘좋은일만’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 우주의 90%가 어둠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나. 하다못해 냇가의 조약돌도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른데.

올해도 분명 365일 중에 90%(328.5일) 정도는 얻어터지면서 살지 않을까. 왜? 행복은 1t을 가져도 늘 부족하고, 고통은 겨우 1g에도 몸서리치는 게 인간이거든.

해서 올해는 좀 색다르게 실존주의(實存主義)적으로다가 새해(청룡의 해)를 맞이해 보는 건 어떨까. 공교롭게도 병태가 경태 일당에 대한 응징을 위해 쓴 가면도 ‘청룡’이었다. 올 한해도 모쪼록 얻어터지면서 살겠지만 병태가 경태의 주먹에 연신 처맞으면서도 안 아픈 듯 웃었던 것처럼 “다 때린겨?”라고 대차게 맞서보자. 그리고는 한마디 더 해주자. “그럼 인자(이제) 내 차례여.” 쿠팡플레이 2023년 11월 24일 공개. 10부작.

이상길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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