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원 작가와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곳 -1
[최정원 작가와 책 한 권] 울새가 노래하는 곳 -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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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테마에 대한 단상>

소설 ‘울새가 노래하는 곳’은 서울에서 태어나자란 소녀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함께 강원도 산골에 정착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게 열네 살 소녀가 서른셋이 될 때까지 겪고 느껴야 했던 온갖 고통, 삶의 희로애락을 통해 한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운명의 아이러니와 더불어 작금의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채 살고 있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옛 노래의 가사처럼 올드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 안에서 태어났고 그 안에서 자라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작품을 통해 그러한 삶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 최정원 작가의 장편소설 ‘울새가 노래하는 곳’을 매주 금요일 연재한다. 최 작가는 단국대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대학원 석·박사를 졸업했다. 2017년 신춘문예 소설 ‘마지막 수유 시간’으로 등단했다.

<편집자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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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행사에 참석했던 차입니다.”

점식이 삼촌이 스피커폰에다 대고 말하자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바리케이드가 올라갔다. 점식이 삼촌은 이마를 트럭 앞 유리에 바짝 대고 안내판을 들여다보았다. C사 정문 앞길은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과 외곽으로 나가는 길로 나뉘어 있었다.

트럭이 고속도로 들어서자 차창 밖 풍경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집들과 논밭이 드문드문 보이더니 이내 나무가 우거진 산들이 펼쳐졌다. 트럭 안에는 침묵이 채워졌다.

잠시 후, 점식이 삼촌의 목소리가 차 안의 침묵을 깼다.

“진실이, 다시 한번 축하해.”

“삼촌도 바쁘셨을 텐데 서울까지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점식이 삼촌은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이다 껌을 씹기 시작했다. 점식이 삼촌이 입을 오물거리며 껌을 씹을 때마다 뭉툭한 콧방울을 덮고 있던 갈색의 점도 따라 움직였다. 언젠가 아버지로부터 점식이 삼촌은 태어날 때부터 콧방울에 점이 있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름까지 점식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도.

하늘이 검어졌다 싶었는데 어느새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치면서 길게 흘러내렸다. 트럭은 연신 털털거리며 달렸다. 얼마쯤 갔을까. 눈앞에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그때부터 트럭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나는 손으로 안전띠를 조이고 나서 점식이 삼촌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나 점식이 삼촌의 표정은 태연해 보였다.

오래전부터 점식이 삼촌은 강원도 산속에서 캔 약초를 트럭에 싣고 서울 약재시장에 내다 파는 일을 해왔다. 직업이 직업인만큼 이 정도의 험한 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점식이 삼촌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자칫 트럭이 저 낭떠러지 아래로 구르게 되면 이장한 어머니의 산소도 보지 못한 채 어머니를 따라가지나 않을까 불안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느낌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공연히 말이 씨가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점식이 삼촌으로부터 아무래도 어머니의 산소를 이장해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어느 순간 비도 그치고 하늘을 덮고 있던 검은 구름도 옅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내 트럭이 평평한 길에 들어섰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나는 잠시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점식이 삼촌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씹고 있던 껌을 뱉고 나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트럭이 올해로 열아홉 살이야. 사람으로 치면 아흔아홉 살쯤 된 셈이지. 허허허.”

“그럼 이 트럭이 그때 그…….”

점식이 삼촌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내가 지금 타고 있는 이 트럭이 오래전 서울 집을 떠나 강원도 산속 외딴집으로 갈 때 이삿짐을 싣고 갔던 그 트럭이란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더니 위아래 눈꺼풀이 저절로 달라붙는 듯해서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런저런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삶이니 운명이니 하는 모호한 상념에서부터 갑작스럽게 맞게 된 집안의 몰락과 그에 더해 가족과의 이별, 이별 뒤에 찾아온 외로움과 싸워야 했던 일들이 어제 겪은 일인 양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렇듯 나는 머릿속에서 어떤 것에 대해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이어졌다. 어쩌다 이런 습관에 물들게 됐는지 스스로도 설명할 길이 없지만 굳이 그 이유를 찾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2화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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