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고파요
아기가 고파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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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문우들이 모인 회식 자리에서 맞은편에 앉은 후배 Y와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제 Y도 결혼해야지. 벌써 마흔이 다 됐잖아.”

“선배님,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저의 인생 사전에는 결혼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출산할 생각은 더욱 없고요.”

“이 순간이 영원히 머무는 건 아니지. 세월이 지나고 나면 누구든지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한 가지 정도는 후회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나한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고 묻는다면, ‘부부가 함께 아기가 재롱 피우는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던 때!’라고 대답할 것 같아. 그 행복이 어떤 것이냐고 되묻는다면, 그 행복은 어떤 권력이나 명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행복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후배가 당당하게 말했다.

“저는 자식은 절대 원치 않아요.”

그렇게 당당했던 후배를 10여 년 뒤 그녀의 나이 쉰 살을 막 넘겼을 때 다시 만나게 됐다. 그날도 나는 Y와 마주 앉게 되었다. 맥주 한 잔씩 오간 뒤, 얼굴이 발그레해진 Y가 울먹이며 말했다.

“선배님! 저 요즘 갑자기 아기가 무척 고파요.”

“그럼 입양해.”

“입양은 아니고 내 배 아파 낳고 싶단 말입니다.”

필자는 후배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이미 떠나버린 시간의 기차를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불현듯 필자의 머릿속에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 씨가 떠올랐다. 몇 년 전, 사유리 씨가 배우자 없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이 알려진 바 있었다. 이를테면, 그녀 자신이 ‘자발적 비혼 출산’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은 것이다. 이유는, 그녀가 난소 검사 결과 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당시 이 사실이 알려지자 법률전문가들은 사유리 씨와 같은 비혼 여성 출산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족 형태와 출산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법 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자발적 비혼 출산’을 장려할 필요는 없으나 전적으로 출산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이 담긴 ‘3포세대’란 말이 등장한 지는 이미 오래다. 그 뒤로 집과 경력을 포기한 ‘5포 세대’란 말이 생겨났다. 거기에 더해 지금은 인간관계·꿈·희망·외모·건강 등을 포기한 ‘10포 세대’란 말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결혼은 하되 출산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부류의 젊은이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요즈음 젊은이들의 삶이 녹녹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어떤 삶이든 치열하지 않은 삶은 없다. 누가 더 치열하게 살았는가 하는 문제는 다른 사람의 잣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지나고 보면 모두가 한순간이다. 자칫하면 남는 건 후회뿐. 더 이상 Y와 같은 젊은 여성들이 나오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어찌 보면 인생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만 한다. 싸움에서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자신이다.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는 사람만이 10포 세대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 X세대에 이르기까지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도 용케 잘 살아 냈는데… 무엇이 이들을 3포니, 5포니, 10포니 하는 생소한 벼랑으로 내몰리게 했는지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싶다.

최정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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