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 문제가 있으니 발전한다
[안전파수꾼] 문제가 있으니 발전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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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보내준 글 중에 시간이 꽤 지났건만, 머리에 여운이 길게 남는 글이 있다. “살아가면서 제일 위험한 때가 언제냐?”고 물으니 “살면서 내가 지고 가야 할 짐이 없을 때다.”라고 답했단다. 그 짐이란 가슴앓이하는 근심거리나 잊고 싶은 골칫거리일 거다. 역설적이지만, 편할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말이다. 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까.

필자의 기억으론 회사생활 30여년 동안 편하게 보낸 적이 거의 없다. 입사 때부터 “회사에 문제가 많아 큰일 났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고, “이대로 가다간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퇴직 때까지 그랬다. 그러나 회사는 위기를 발판으로 계속 발전했다.

위기 속에 건전해진다는 말이 있다. 위기가 닥치면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에 더욱 매진할 것이고 국가나 기관 등의 체질개선도 이루어진다. 즉, 위기가 동력이 되는 것이다. 개인이건 국가건 문제가 쌓이면 위기가 발생하고 비로소 대응한다. 이때 제대로 대응하면 큰 발전을 이루지만, 대부분 미봉책에 그친다. 가장 큰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1천700만명의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 ‘명량’은 배 한 척으로 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리더십의 결정판이다. 칠천량의 패전과 전력의 절대 열세로 패배의 두려움에 휩싸인 조선 수군에게는 특단의 대책이 절실했다. “두려움은 필시 적과 아군을 구별치 않고 나타난다. 만약에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그 용기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의 각오다.

전군에게 “우리는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고 일갈하고 군영을 전부 불태워 스스로 물러설 곳이 없게 만든다. 결국, 끝을 모르는 위기에도 모두 죽고자 하니 살았다. 백성들도 하나로 만들어 그들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승리로 바꾼다. 영화 말미에 조카 완이 “이 모든 것이 장군께서 예측한 것인지?”를 조심스럽게 묻는다. “아니다, 천행이었다”라고 답한다. 즉, 실패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모험을 강행한 것이다. 일본군은 후방의 막대한 지원군이 있었음에도 실패의 두려움에 더 진격하지 못했다. 이것이 결정적 차이였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으로 유명한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의 일화는 행동의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그가 낙서 제거, 청소 등 사소한 일들을 뚝심 있게 실행하여 범죄 소굴 뉴욕시를 회생시켰다. 골칫덩어리 난제도 사소한 문제부터 하나씩 실천해 나가면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다. 우리 사회도 논란을 일으켰던 사고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와 행동은 미약했다. 그저 정치공방과 책임자 처벌만 이슈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발전하는 것은 밑바닥 시민사회의 자발적 행동 때문이다.

인간은 대체로 편하고 쉬운 것만 찾고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위기는 반복된다. 부자는 되고 싶은데 일은 하기 싫고, 건강해지고 싶은데 운동은 하기 싫고, 맛있는 것은 많이 먹고 싶은데 살찌기는 싫다. 그러나 하기 싫은 것을 해야, 나와 세상이 좋아지고 건강해진다. 말보다 실천이 쉽지 않다. 현재 나 자신이 딱 그 모습이다. 요즘 들어 점점 더 무엇을 하기가 귀찮아진다. 자전거 타기 등 이것저것 시작하였으나 자전거에는 먼지가 쌓이고 타이어 바람이 빠진 지 오래다. 하나라도 제대로 꾸준히 해야 하는데 용두사미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얼굴이 좋아 보인다”면서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냐?”고 잽을 날린다. 남의 속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속은 온갖 쓸데없는 걱정거리로 복잡한데 말이다. 문제가 있어도 그저 생각뿐 행동에 옮기는 게 없다. 그러니 연초부터 목디스크에 허리통증을 달고 산다. 지고 갈 짐이 없어 보이나, 실은 걱정거리로 가득한데 그저 걱정만 하고 있으니 문제다. 아마 세상 사람의 모습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테고, 바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문제를 차분히 하나씩 개선하다 보면, 개인이나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해보자. ‘문제가 있으니 발전한다’는 말이 진리다. 새해에는 다 같이 좋은 모습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한다.

고경수 NCN 운영위원·前 삼성비피화학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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