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길] 정신교육교재, ‘눈 가리고 아웅’해서야
[안보의 길] 정신교육교재, ‘눈 가리고 아웅’해서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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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 전투력은 대개 유형전력과 무형전력으로 나눈다. ‘유형전력’은 말 그대로 소화기(小火器)부터 전차, 전투함, 전투기 등 가시적 무기체계를 말한다. 반면, ‘무형전력’은 무기를 다룰 수 있는 기술 및 운용전력과 장병들의 전투의지, 사기, 리더십 등을 포괄하는 정신전력으로 구성된다. 이 정신전력을 높이는 대표적 방법이 바로 ‘정신교육’이다.

정신교육교재는 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하는 정규 정신교육에 활용하는 표준교과서 또는 지침서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발간된 이 교재가 논란이 컸고, 결국 국방부는 전량 회수하기에 이르렀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들여다보자.

먼저, 우리 독도를 ‘영토분쟁과 군사적 충돌이 가능한 지역’으로 표현한 것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이 기술에 대해 국방부는 궁색하게 해명했지만, 일반적 관점에서 누가 보아도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 확연히 배치된다. 대통령이 이 표현에 대해 질책하자 그제야 교재를 전량 회수하고 집필과정을 감사하겠다고 태도를 바꾸었다. 설상가상으로, 열한 번 실린 한반도 지도에는 독도가 표기조차 되지 않았다.

이 교재는 통상 군의 공보정훈병(옛 정훈병)과 현역 및 예비역 장교들이 집필을 맡고, 자문이나 감수에는 각 군 병과장들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이처럼, 교재가 발간되기 전까지 몇 차례 검토하는 시스템이 있었음에도 결과는 엉뚱하게 나왔다. 이것이 과연 실수였는지는, 공보정훈장교 출신인 필자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한 과오는 자칫 군 장병들에게 잘못된 안보관·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다분히 있다. 독도는 이미 우리가 현재 실효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영유권 갈등이나 영토분쟁이 있는 지역으로 서술하게 되면 오히려 일본에 유리한 입지를 넘겨주는 꼴이 된다. 그래서 일본 방위백서에는 독도를 ‘분쟁지역’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음, 우리의 적을 설정한 것도 과거와는 달리 특이해 보인다. ‘대적관’ 영역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우리의 명백한 적’으로 명시한 것에 더해, 이례적으로 ‘내부 위협세력’까지 언급했다. 이는 ‘북한의 대남적화 획책에 따라 우리 내부에서 대한민국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 3대 세습 정권과 최악의 인권유린 실태, 극심한 경제난 등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북한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그동안 역사에서 우리 국민이 피땀 어린 희생으로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절대 훼손되거나 부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우리 헌법에도 방어적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잘 구현되어 있다. 그런데, 내부 위협세력은 과거 보수정권 시절 자주 등장했던 ‘종북세력’, 최근 ‘반국가세력’과도 맥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자칫 내부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게다가 ‘침묵’ 같은 일부 과한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이 교재는 사업계획에 따라 5년마다 재발간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재발간 시기는 정권교체 주기와 일치한다. 분명한 것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 국민 누구나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 상식과 공감대를 기본 바탕으로 해야 함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 가운데, 장병의 국가관·안보관·역사관 확립에 중점을 둔 내용을 잘 선별해서 실어야 한다.

경계할 것은 ‘내로남불’ 식으로 과거 정부의 평화를 위한 노력과 성과는 하향 평가하고 현 정부의 실적은 과대 포장하는 홍보지 같은 느낌을 전하는 일로, 결코 그래선 안 될 것이다. 바꾸어 말해, 해바라기처럼 정권을 향한, 이념 편향적 자세로 교재를 제작했다고 지적받는 것이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 정권의 세계관을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에 무작정 투영하려는 모습도 썩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향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하지 않을 방안을 이제 고민할 시점이 아닐까?

김기환 민방위 전문강사·예비역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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