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을 지켜주는 무룡산(舞龍山)
울산을 지켜주는 무룡산(舞龍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4.01.01 19:19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울산의 주된 산줄기인 삼태지맥이다. 이 지맥은 토함산 남쪽 6km 지점에서 남하하여 삼태봉(629m)을 거쳐 울산으로 내려온다. 울산에서는 파군산(526m)과 동대산(447m)을 지나 무룡산(452m)에 닿는다. 다시 정자고개로 내려앉았다가 염포산으로 이어지다가 화암추등대에서 맥을 다한다. 이 중에서 ‘무룡산’은 총 41km 산줄기의 중간 지점에 있는데, 깔고 앉은 산자락이 펑퍼짐하다.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울산의 모든 앞바다가 내려다보일 만큼 일망무제가 펼쳐진다.

이 ‘무룡산’은 예부터 울산의 진산(鎭山)이었다. 진산은 고을을 지키는 수호산이기에 무룡산은 곧 울산을 지켜주는 산이다. 때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비가 내리기를 빌던 성스러운 산이었다. 산 정상에 묘를 들이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설이 있어서 가뭄 때면 묘를 파내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무룡산의 본래 이름은 ‘무리룡산’이었다. ‘무리(無里)’는 ‘물’을 의미하는데, 이는 곧 산 정상부에 물이 그득한 산상 연못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지금의 명칭인 ‘무룡산(舞龍山)’은 어원은 다음과 같다. 기우제의 옛말인 ‘무우제(舞雩祭)’의 ‘무(舞)’자와 ‘용(龍)’에 얽힌 유서 깊은 전설이 있어서 ‘무룡산’이다. 옥황상제가 일곱 마리의 용 중에서 눈먼 용을 눈뜨게 해주고 착한 선녀와의 배필을 허락해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름답게 종결된 전설이다. 산상 연못이 있던 산꼭대기는 물새들과 산짐승들도 한가롭게 노닐었다. 오색 무지개가 수시로 드리우고,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신천지 같은 곳이었다.

무룡산은 먼 옛날의 이야기들도 많이 품고 있다.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던 충신 박제상의 모습을 기억한다. 교역품을 싣고 드나들던 신라 때의 선박도, 소금 싣고 떠나던 배들도 지켜주었다. 산자락 도처의 쇠부리터도, 숯가마터도 다 허용하였다. 호족 박윤웅이 고려에 귀부하면서 식읍으로 물려받았던 미역바위는 지금도 지켜주고 있다. 넓디넓은 염전이 비행장에서, 다시 시가지의 중심이 된 삼산 너른 평야의 변신도 다 지켜보았다.

역사 속의 무룡산은 더욱 늠연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3개월 전에 울산 선비 열네 분과 다른 고을 선비 등 18분이 무룡산에 올라 흉흉한 소문을 염려하면서 결사 항전을 결의하였다. 실제로 울산 선비들은 왜란에 대비하여 산성에 들어가 성을 정비하였고, 군량미 4백석과 철 2천근, 화살 재료들을 마련하였다. 임란 중에는 기박산성에서 무룡산으로 진(鎭)을 옮기고 대오를 다시 갖추었다. 무룡산 자락인 달령에서는 직접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 역사의 현장이다.

무룡산의 현대사는 명암이 엇갈린다. 196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스캐터 통신시설이 산 정상에 들어섰다. 지금도 우뚝 서 있는 거대한 파라볼라 안테나는 한국 IT산업에 획기적인 전기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한일 해저 광케이블이 개통되면서 지금은 통신 유적지일 뿐이다. 방송국의 송신 시설을 포함한 구조물들 때문에 무룡산의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지금이라도 울산의 진산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재정비와 복원이 필요하다.

무룡산의 영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산에서 바라본 울산은 결코 좋은 모습만 보여준 게 아니었다. 공장 굴뚝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축복의 시간은 소멸되었고, 버려진 공장폐수와 생활하수는 강과 바다를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2천 년대 이후 태화강은 다시 생명의 강으로 부활하였고, 도심에 국가정원이 조성되는 등 변신을 거듭하였다. 지금의 무룡산 야경은 울산만을 가득 채운 수많은 배들과 인근의 산업 현장, 울산대교가 장관을 빚어내고 있다.

울산은 새해 들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자동차, 조선, 화학, 수소, 이차전지 분야에서 신기술 개발을 시도한다. 현대자동차, 울산과학기술원, 항공안전기술원 등 지역 대기업과 혁신기관들은 첨단항공 이동수단과 미래형 자동차 시장의 원천기술 확보에도 나선다. 무룡산은 앞으로도 울산 신항이 세계로 뻗어가는 선박들과 오일허브 기능을 능히 감당하도록 지켜줄 것이다. 부유식 해상풍력 발전 설비들이 들어차는 울산 앞바다 또한 자랑스러워하며 지켜주지 싶다.

이정호 수필가·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