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오산(鰲山)에서 바라보는 비경(祕境)
[조상제의 자연산책]오산(鰲山)에서 바라보는 비경(祕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2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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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공간, 힐링의 공간, 치유의 공간 태화강국가정원. 이곳엔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산과 강과 새와 대나무 숲이 어울린 이곳. 남산 12봉과 대숲에서 음이온과 피톤치드가 쏟아져 나와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입니다. 강에서는 물고기들이 뛰어오르고, 새들은 평화롭게 먹이를 찾아 자맥질을 합니다.

봄이면 남산 12 병풍의 이 폭, 저 폭에서 만발하는 산벚나무를 보노라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요, 무릉도원(武陵桃源)입니다. 이곳이 있어 태화강은 ‘아름다운 강 100선’에 두 번이나 선정되고, 2013년에는 국가정원이 ‘전국 12대 생태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오산입니다. 산이 자라를 닮아 ‘오산(鰲山)’이라 부릅니다.

울산에는 오산이 두 곳에 있었습니다. 이수삼산(二水三山)에 있던 외오산(外鰲山)은 1930년경 일제가 비행장을 만들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자라의 머리, 등, 꼬리를 닮은 작은 세 봉우리의 흔적으로 ‘삼산’이라는 이름만 남았습니다. 외오산은 사라져도 내오산은 지금도 국가정원에 남아 있습니다. 이곳은 울산의 고지도에서 태화루, 사직단(社稷壇), 은월봉, 선바위와 함께 거의 빠지지 않고 표기되는 아주 중요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는 ‘만회정(晩悔亭)’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28세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김해, 갑산 등지에서 부사(府使)를 지낸 만회당(晩悔堂) 박취문(朴就文, 1617~1690) 선생이 말년에 이곳에 정자를 지어 휴식하고 교우하던 곳입니다. 관어대(觀魚臺)에서 친구들과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도 관찰하고 낚시도 했을 것입니다. 정자는 1800년대에 소실된 것을 2011년 울산시에서 시민들을 위해 중건했습니다.

특히 박취문 선생은 부친 박계숙(朴繼叔:1569~1646)과 함께 <부북일기(赴北日記)>를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박계숙은 1605년 10월 15일부터 1607년 1월 1일까지, 박취문은 1644년 12월 9일부터 1646년 4월 4일까지 일 년여 남짓씩 함경도에 부방(赴防)으로 파견되어 근무하였습니다.

부방은 조선시대에 변방을 지키던 벼슬로 무과 출신은 모두 한 번씩 변방에서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부북일기는 이때 울산에서 함경도 회령에 이르는 노정(路程)과 부방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무관이 남긴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매우 커, 2006년 ‘울산광역시 제14호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현재 울산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1800년대 만회정이 소실된 후 1900년대 들어서는 오산의 주인이 달성서씨 유생 서장성(徐章聲:1880~1952)으로 넘어갑니다. 오산의 정상에는 지금도 무덤이 있습니다. 서장성이라는 분이 이곳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살다 돌아가신 후 후손들이 그분을 이곳에 모신 것으로 보입니다.

오산 서쪽 명정천 언덕에는 아직 글자도 선명한 서장성의 시비(詩碑)가 바위에 남아 있습니다. 시비 아랫부분에는 ‘자(字)는 국윤(國允)이요, 호(號)는 화정(和亭)’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울타리를 쳐서 관광객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 놓아 좀 아쉽긴 합니다. 후손들이 지어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비의 해석에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으므로 <태화강국가정원 백서>에 있는 내용이 정확한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1749년에 간행된 울산 최초의 읍지 <학성지(鶴城誌)>에는 “내오산(內鰲山)은 태화진 서쪽 수리(數里)에 있다. 작은 언덕이 강에 닿아있고 경치가 그윽하고 묘하다. 정자 앞에는 긴 대숲이 몇 무(畝) 있고, 아래에는 낚시터가 있어서 觀魚臺(관어대) 세 글자를 새겨놓았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곳에 오면 경치가 너무나도 그윽하고, 고요하고, 아늑하고, 묘하고, 평화롭습니다. 경치로는 천하명당이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정자 앞에는 기다란 대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몇 무(畝)’라고 했고 1무는 30평으로 보니 이 정자 앞쪽엔 적어도 100여 평의 대나무가 자라는 기다란 하중도(河中島)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박취문이 낚시를 할 때도 관어대 앞에는 대나무가 자라는 섬이 있어 이곳에 많은 물고기가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조상제 ‘울산 민물고기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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