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와 ‘엽전’
‘오일머니’와 ‘엽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26 2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3년 11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2030 세계박람회’ 개최지를 정하는 국제박람회기구(BIE)의 제173차 총회가 있었다. 회원국의 투표 결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119표, 대한민국 부산이 29표, 이탈리아 로마가 17표를 얻었다.

우리나라는 50만 개 일자리 창출, 61조 원 규모의 경제적 이익 창출 등 메가 이벤트(mega-event)의 기대를 부각했으나 부산 유치에는 끝내 실패하고 만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탈락이 확정된 29일 새벽, 패인을 이렇게 말했다. “세계박람회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정해놓고도 본격적인 유치전에 사우디보다 1년이나 늦게 나선 점은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외교가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을 뒤늦게 우리가 나서서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지난해 7월 국무총리 직속 정부 유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유치 활동을 시작했다. 2030년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계획안이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은 지 4년 3개월 만이었다. 반면 우리보다 한참 뒤에 유치 의사를 밝힌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보다 1년 이상 앞서 본격적인 유치 활동을 시작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막강한 오일머니를 앞세우며 지구를 한 바퀴나 돌았다. (2023.11.29. 한겨레. ‘부산시가 말하는 “우리가 사우디에 참패한 이유는…”’)

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 후 국내 언론들은 △기획재정부 승인을 받은 지 4년 3개월 만에 유치 활동을 시작한 점 △사우디아라비아보다 1년이나 늦게 본격 유치전에 뛰어든 점 등에 대해 냉철한 분석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 “오일머니에 밀렸다”라는 점을 일제히 부각했다. 이쯤에서 솔직하게 묻고 싶다. 속담에 ‘돈은 귀신도 부린다’라고 했다. 우리는 진정 돈의 위력을 처음부터 몰랐나? 산유국에 ‘오일머니’가 있다면, 우리는 ‘엽전’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나?

엽전의 큰 힘을 잘 말해주는 노래 한 자락을 소개한다. “대장군 잘 있거라 다시 오마 고향산천/ 과거 보러 한양천리 떠나가는 나그네에 (줄임) 청노새 안장 위에 실어주던/ 아∼ 엽전 열닷냥”(‘엽전 열닷냥’ 1절 가사)

오래된 ‘엽전 열닷냥’ 노래에는 청노새를 타고 과거 길에 오른 낭군에게 노잣돈을 건네주는 낭자의 정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서 과거(科擧)를 준비하던 낭군과 낭자를 통해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작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먼저, 우리 속담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라는 말이 있다. 낭군이 타고 간 것은 비행기도 말도 당나귀도 아닌, 노새였다. 낭군은 한양에서 치르는 과거 날짜가 닥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일찍 길을 나섰다. 우리나라는 일찍 승인받고 늦게 시작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늦게 승인받고 일찍 뛰어들었다. 여기서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고 함부로 나대는 사람을 풍자한 노래 ‘빈대떡 신사’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왜 맞을까 왜 맞을까/ 원인은 한 가지 돈이 없어/ 들어갈 땐 폼을 내어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매를 맞누나 매를 맞누나/(줄임)/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빈대떡 신사’ 1절 가사)”.

일찍 일어난 낭군과 엽전 열 닷 냥을 건네준 낭자가 협력한 결과는 ‘과거 합격’이었다. 누구나 실패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성공 사례는 반드시 참고하자. 누군가의 말대로 ‘이젠 솔직했으면 좋겠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