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기철 작가의 ‘책 한 권 드실래요?’] ‘아버지의 이름으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8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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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백가흠-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
‘아버지, 그때 왜 그러셨어요?’라는 말. 화해(和解)는 항상 모자람에서 해답을 찾아낸다. 아버지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가 되고 난 후 비로소 깨닫게 되는 법이라지. 아직 아버지가 되지 못한 사람, 결핍이 많아서 이름에도 ‘흠’이 들어있다는 농(濃)을 던지는 작가가 건네는 부친(父親) 이야기.

소설가 백가흠 씨가 쓴 산문집, ‘느네 아버지 방에서 운다’는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해 아버지에게로 이어진다. 가족사를 중심에 놓고 주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는 덤이다.

문학에 대한 열망을 품고 책을 손에서 한시라도 놓지 않던 아버지는 ‘삶의 무게’를 진 채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 생애를 끌고 오신 분이다. 집에서 무럭무럭 크던 아버지 책들은 본인 꿈을 이뤄주기는커녕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던 꿈’은 아들이 완성한다.

어느 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전화를 넣는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지내던 아버지 학교로 전화해 기쁜 소식을 알렸다.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어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학교에 계시지 않았다.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야, 느네 아버지, 학교 조퇴하고 와서, 방에서 운다.” 자신을 대신해 작가(作家)가 된 아들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어서 결혼하지 않은 아들은 제법 인기를 누리는 소설가가 된 지 오래지만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그에게 그때마다 ‘아버지’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어머니 뒤에서 조용히 조연(助演)처럼 등장한다.

화장실에 들어가면 도무지 나올 생각이 없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가곡이나 찬송가, 클래식 한 대목을 부르며 볼일을 보셨다. 특히 가수 정미조 씨 노래를 좋아했는데 ‘개여울’, ‘휘파람을 부세요’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문학도를 꿈꾸던 아버지가 푸세식 똥간에서 부른 그 노래는 현재 합창단원이 되게 한 원동력이었을까? 아니면 설움을 꾹꾹 눌러 담던 희망가였을까? 가늠이 안 되지만 그 슬픔에 닿아보는 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를 작가로 만든 건 ‘아버지와 국어사전’이었다. 전기공학과를 지망했지만 떨어진 뒤 아버지 권유로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다. 글을 쓸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는 군대에서 2천200쪽짜리 국어사전을 꼼꼼하게 읽어냈다. 제대 후 일 년 뒤 그는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작품을 읽은 본 독자는 안다. 때로는 불편하고 당황스럽게 만든다. “언젠가 한 독자는 ‘인물을 이렇게 불행과 고통에 던져놓으면 어떻게 하냐’고 따져 물은 적도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삶이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위안을 준다는 것, 나는 믿는다.”

그는 ‘속도’를 믿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외면하지 못한다. 조금 느린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날 때 느닷없이 찾아오는 ‘그리움’, ‘낭만’ 등은 잠시 추억으로 밀고 가지만 그때뿐이다. 어차피 ‘성장 서사’는 현재 속력을 인정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삶을 저자가 너끈히 지고 가는 이유가 뭘까? “소설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란다. 되도록 집에서 멀어지고 싶어서 ‘서울’에 입성했지만 ‘도시 풍경’은 언제나 생경하고 다정하지 않지만 그는 쓴다. 어릴 적 별명이 고행석 만화 주인공 ‘구영탄’을 닮아 ‘졸음이’였다. 눈꼬리가 처지고 항상 졸음이 묻어나는 모습이어서 그렇게 불렸다. 지금은 달라졌다고 한다. 얼굴은 욕망이 주는 결과물. 다행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개인 영달을 목표로 한 게 아니어서 아버지가 남긴 유산 혹은 바램은 본인이 말한 대로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말을 팔아 산후로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고백이 무색하도록 정진하고 있다.

그가 가진 걱정 하나. ‘아버지가 나와 페친(페이스북 친구)이어서 일거수를 파악하고 있는데, 혹 이 글을 보고 민망함이 서로 늘지 않을지’가 전부다. 책 마지막에 놓인 이상선 화가 작품, ‘날으는 들꽃’ 감상도 놓치지 말고 살펴보면 좋다. (도판이 컬러가 아니어서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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