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물 다른 결과’
‘같은 물 다른 결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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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담에 ‘불안삼도(佛顔三度)’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도 도가 지나치면 죄를 묻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금도(禁度=넘지 말아야 할 선)를 넘은 역신(疫神)이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 용서를 받은 일도 있었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에 그 내용을 적었다. 사람에게 전염병을 퍼뜨리는 역신이 처용 아내가 잠든 방의 경계를 넘는 이야기였다. 역신이 금방 잘못을 깨닫고 처용에게 무릎을 꿇고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면서 용서를 빌었다는 것이다.

또 처용의 금도(襟度=남을 용납할 줄 아는 아량)로 용서를 받은 역신이 먼저 처용에게 한 약속도 있다. 처용이 있는 곳이나 처용을 내세우는 곳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역신에게 어떤 수단으로도 대항하지 못해 삶을 포기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위로의 방편으로 일연스님이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그 당시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은 대다수 사람은 큰 위로를 받았을 것으로 본다.

송나라 야보도천(冶父道川) 선사는 ‘강북에선 탱자가 되고 강남에선 귤이 되지만(江北成枳江南橘), 봄이 오면 모두 함께 같은 꽃을 피운다(春來都放一般化)’라고 했다. 귤꽃이나 탱자꽃도 봄이면 함께 흰 꽃을 피우지만, 그 결과는 환경에 따라 노란 귤 열매를 맺기도 하고, 노란 탱자 열매를 맺기도 한다는 뜻이다. 귤도 탱자도 환경에 따라 뒤바뀌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귤이 되기도 하고 탱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대혜종고(大慧宗?) 선사가 옳지 않은 행동이나 잘못된 일을 하지 않도록 미리 타일러 주의시킨 게송(偈頌)이 있다. “날카로운 칼날에 발려있는 꿀을 핥아 먹지 말고(利刃有蜜不須?)/ 독약이 있는 우물의 물을 떠서 마시지 말아라(蠱毒之家水莫嘗)/ 핥지도 않고 물을 맛보지도 않고 두 가지 다 범(犯)하지 아니하면(不?不嘗俱不犯)/ 자연히 비단옷을 입고 근본고향에 돌아갈 것이다(自然衣錦自還鄕)”라는 게송이다.

지공(誌公) 선사는 〈권세염불문(勸世念佛文)〉에서 이렇게 읊었다. “닭장 속의 닭은 식량이 있어도 노구솥과 가깝고(籠鷄有食湯鍋近)/ 들의 학은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어도 천지간에 자유롭더라(野鶴無糧天地寬).”

<법화경> 〈약초유품〉에는 “비록 같은 땅에서 같은 비를 맞고 자라지만 여러 가지 초목이 각각 차별이 있다(雖一地所生 一雨所潤 而諸草木 各有差別)”라고 하여 같은 환경 속의 다른 차별을 말하고 있다. 이는 곧 같은 물을 먹고도 뱀과 소와 꽃이 각각 독과 우유와 꿀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어떤 죽음과 주검’을 두고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화젯거리가 있다. 자연인의 자연적 죽음이 아닌, 공인의 특이한 죽음과 주검이 연관된 것이다. 일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객관적 지식·이해력·판단력과는 거리가 먼, ‘분신공양(焚身供養)’ 혹은 ‘자화장(自火葬)’이라는 용어도 궁금증에 한 몫을 더했을 것이다.

‘어떤 죽음과 주검’을 ‘극단적 선택’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일반적인 삶이 아닌 ‘특수한 삶’과 일반적 공간이 아닌 ‘특수한 공간’에서 발견된 죽음과 주검이었기 때문이다. ‘거자일소(去者日疏)’란 죽은 사람은 날이 갈수록 잊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자업자득(自業自得),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 했던가? 누구든지 업보(業報)를 인식하여 처신에 신중했으면 좋겠다. 금도(禁度)를 넘는 것은 결코 금도(襟度)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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