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향기] 교육 현실과 ‘딱’ 마주친 늦둥이 막내
[아침향기] 교육 현실과 ‘딱’ 마주친 늦둥이 막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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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막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무슨 배짱인지 초등학교 때까지는 예능학원에서 좋아하는 것만 배웠다. 불안한 마음에 영어와 수학학원만이라도 다니길 권유했지만,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다행히 중1은 자유학기제라 학교 시험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많은 시간을 좋아하는 피아노와 그림에 빠졌다. 창의성이 풍부해 새로운 표현이 늘어나고, 아이는 날마다 즐거움이 넘쳤다. 그러다가 중2가 되면서 난감한 성적표를 만나게 된다. 아이는 놀랐고, 그때부터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여 내년에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다.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방학을 효과적으로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는 중이다.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는 아이의 의지에 박수를 보내며 학원 상담을 같이 갔다. 기숙학원은 아니지만,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식사제공까지 해 주며 수업과 자기주도학습까지 챙겨주는 학원이다. 해당 학년의 정원 600명은 이미 마감되었고, 대기인원만 70명이 넘어 입학이 어렵단다. 수업료도 상당하다. 비슷한 형태의 학원 몇 군데를 더 문의했는데 모두 마감이다. 방학이 아직 많이 남았으나 너무 늦게 찾은 것이다. 엄마가 너무 무관심했다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했다. 아이 친구는 울산이 다 마감되어 방학 동안 부산에 원룸을 구해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는 말에 아이도 나도 놀랐다.

킬러문항이 배제된 올해 수능시험은 불수능으로 불릴 만큼 어려웠다. 킬러문항이 사라지면 쉬워질 거라 기대했으나, 높은 난이도로 인해 사교육에 대한 필요성만 더 강조되고 말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려면 탄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올해 수능을 보더라도 울산지역의 국영수 성적이 전국 평균보다 낮았다. 지방에서는 내신이 좋아도 수능 최저등급을 못 맞추어 불합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년을 미친 듯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남은 인생은 저절로 행복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딱 3년만 공부하는 기계가 되라!”고, “학생의 본분은 공부니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된다.”고 강요한다.

아이의 온갖 투정과 스트레스를 받아 주며 부모는 속이 탄다.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엄청난 사교육비에 등골이 휘지만, 그것 또한 대한민국 부모라면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인다. 지나친 경쟁의식을 바탕으로 한 좋은 학벌은 학력 계급사회를 구성하며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교육개혁 없이 사회변화는 어렵다. 인성을 바탕으로 아이의 소질과 적성을 살펴 꿈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입시감옥에 가두어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아야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의대 열풍이 더욱 경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학교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공부하는 곳이기에 앞서, 훌륭한 인격 완성을 위한 자질을 배우는 곳이다. 또래들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공동체를 통해 인간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지식을 배우는 곳이다. 하지만 최근에 학교 부적응이나 교우문제가 아닌 대학진학에 유리한 성적을 이유로 자퇴생이 늘어나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가 들린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과 창의성을 키우며 전인교육을 담당하는 학교가 위기다. 심각한 교권 추락으로 공교육이 무너지면서 수많은 교사가 신음하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은 학생을 존중할 때 교육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룬다. 특히, 가정에서의 자녀에 대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공부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코앞에 있는 학교를 두고 내신을 잘 받기 위해 멀리 있는 학교에 진학하려는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이는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로서 이런 교육의 현실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체력이 약한 아이의 건강도 큰 걱정이다. 이번 방학에 무엇보다 보약이라도 먼저 챙겨줘야겠다. 늦둥이 예비 고1 부모의 무거운 마음을 아는지, 오늘따라 바람이 많이 불고 날도 차갑다.

김미정 ㈜케이연성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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