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괴물’ 괴물은 누구게?
영화 ‘괴물’ 괴물은 누구게?
  • 이상길 기자
  • 승인 2023.12.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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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지만 대상을 볼 땐 늘 2차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그 대상의 옆면과 뒷면은 볼 수가 없다. 눈으로 보여지는 시야(視野)라는 것의 한계인데 누군가 대상의 옆면과 뒷면에 대해 알려주게 되면 비로소 3차원에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니까 진실에 근접했다고 믿는다. 다만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의 옆면과 뒷면을 그 누군가가 각각 정면에서 보고 말을 해줄 때만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 역시 대상을 2차원으로 밖에 못 보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고 만약 그도 다른 누군가에게서 그저 주워들은 이야기일 뿐일 땐 상황은 복잡해진다. 다시 말해 진실왜곡에 따른 오해가 생길 소지가 다분해진다. 아니 그보다 한 가운데 대상을 놓고 20명의 사람이 강강술래를 하듯 둥글게 둘러쌌을 때 그 20명이 보는 대상의 앞면과 옆면, 뒷면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관찰하는 위치에 따라 그렇게 다 다른데 주로 진실과 관련된 대상의 뒷면을 우린 어떻게 찾아야 할까. 입체파를 대표하는 피카소가 괜히 입체적인(3차원) 그림을 평면의 캔버스(2차원)에 담아내려 했던 게 아니다. 어쩌면 그는 진실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무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에선 일본의 어느 마을 빌딩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를 주된 대상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초등학생인 미나토(쿠로카와 소야)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 너머 멀리 활활 타오르는 빌딩이 눈에 들어온다. 화재는 분명 하나의 사건이고 미나토는 그걸 엄마 사오리(안도 사쿠라)와 함께 지켜본다. 물론 미나토와 사오리는 불길에 휩싸인 빌딩의 옆면과 뒷면은 볼 수가 없다. 앞면밖에 볼 수 없는 2차원의 시야가 지닌 한계인 셈이다.

한편 불이 났다는 건 큰일이고, 지금 마을 사람들은 다들 화재가 난 빌딩을 쳐다보고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미나토와 사오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옆면, 뒷면)을 정면에서 보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 <괴물>은 바로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 보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실제로 사오리에게는 집에 불이 난 것만큼 큰일이 생기는데 바로 아들 미나토가 점점 이상해져 갔던 것이다. 갑자기 머리카락을 스스로 자르질 않나, 늦은 밤에 혼자서 어두컴컴한 터널을 배회하더니 엄마가 운전하는 달리는 차에서 갑자기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분명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생각한 사오리는 학교를 찾게 되고, 거기서 이해가 되지 않는 교장 선생님 마키코(타나카 유코)와 담임 선생님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의 행동을 접하게 된다. 아들 미나토가 담임 선생님에게 모욕을 당하고 맞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다른 아이들에게 들은 뒤 그들에게 따지는데 교장과 담임은 시종일관 아무런 감정 없이 기계처럼 사과만 했던 것. 2차원의 눈 앞에 펼쳐진 어이없는 광경에 사오리는 분노하고, 그들이 아들을 이상하게 만든 괴물일 거라 감히 생각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헌데 그즈음 영화는 난데없이 빌딩에 화재가 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니까 아파트 베란다에서 불길에 휩싸인 빌딩을 바라보는 미나토와 사오리 반대 지점으로 관점이 이동해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 미나토와 사오리 입장에선 불이 난 빌딩의 뒷면으로 그곳에선 미나토의 담임인 호리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막 지하철역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현 시점에 호리는 미나토에게 가혹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고, 진짜 호리가 미나토에게 가혹행위를 했는지 사오리가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뒷면의 이야기(진실)가 시작되는 셈이다.

사실 포스터에 잘 나오지만 <괴물>의 캐치프레이즈(광고 문구)는 이렇다.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 영화를 다 본 뒤 이 문구가 자꾸 떠올랐던 이유는 영화 제목인 ‘괴물’이라는 단어에 이미 현혹돼 러닝타임 내내 누가 괴물인지를 찾으려는 내가 바로 괴물이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감독이 파놓은 함정이다. 해서 ‘인간의 마음이란 게 있는가’는 결국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눈이 아닌 ‘마음’으로 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눈으로만 보면 2차원으로 밖에 보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3차원, 아니 그 이상의 차원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 왜? 마음으로 보면 ‘너와 나, 혹은 우리 모두가 같다’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 아닐는지. 욕망(행복, 즐거움)을 좇으며 살고, 그러다 보면 시기와 질투도 하고, 뒤에서 험담도 하고, 오해하고, 실수하고, 그러면서 간혹 착한 일도 하고, 울고, 웃고, 자고, 먹고, 싸고, 닦고, 입고, 다들 그러지 않나? 아 맞다. 한 가지 더. 다들 마음속에 ‘괴물’ 한 마리쯤은 데리고 살지. 안 그래요?

<괴물>은 불에서 시작해 물로 끝난다. 처음 빌딩에 난 화재는 태풍이 쏟아낸 폭우로 마무리된다. 불(사건)은 물(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화재(불)와는 달리 비(물)는 세상(서로)을 이어준다. 2023년 11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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