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실의 소소살롱] 신화마을 어벤저스
[최영실의 소소살롱] 신화마을 어벤저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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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12월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니 누구나 지난 일 년을 여러 감정으로 떠올려 볼 것이다. 그중 무언가 계획했던 일을 성취하지 못한 아쉬움을 가장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다. 늘 지나고 나서 후회가 있다는 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의 시간이 주는 숙제이기도 하다.

개인의 차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살면서 무엇이 가장 회한으로 남을까.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은 설문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장 많은 질문지의 답은 바로 ‘여행’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좀 더 아름다운 곳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을 꼽았다고 한다. 얼마간 삶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당장 떠날 것이라고.

연말을 앞두고 아주 특별한 사진전이 과학관에서 열렸다. 서로의 성격과 직업과 개성이 다른 네 명이 함께 삼 년 동안 주말마다 자전거 여행을 다녔던 시간의 기록들 ‘서해’ 1000여 섬을 가진 서해 일주였다. 공무원, 회사원, 농부, 작가, 직업도 다른 이들이 모여 어떻게 그 길고 힘든 여정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내가 아는 그들은 침묵이 일상일 만큼 조용한 사람들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각자의 서로 다른 시각과 생각을 말이 아닌 이미지로 대신한다.

사진전 오프닝 사회를 보았다. 그토록 힘든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간절함이 무엇일까, 궁금해 질문을 했다. 예상했던 대답은 즐거움, 재미, 호기심, 그런 환희를 예상했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상처를, 절망을, 떨쳐내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행은 각자에게 치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길이 없는 곳을 만들어 무거운 자전거를 타고, 들고, 짊어지고, 말할 수 없는 육체적인 고통도 있었겠고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을 달릴 땐 각자의 고독도 있었을 것이다. 말없이 서로의 간격으로 묵묵히 지켜보며 셔터를 눌렀다. 같은 곳을 바라보았지만 각자의 렌즈에 담긴 풍경은 너무도 달랐다. 먼 풍경으로 아스라이 멀어지는 바다를 담은 김양숙 작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바람이 흔들리는 것인가. 초점이 흐려지는 김채규 작가, 외유내강 드러내지 않은 속에 감춘 외침을 과감하게 이미지로 드러내는 김영해 작가, 세상에 의문을 가지며 마음 메였던 궁리를 자문자답으로 펼쳐내는 박태진 작가.

코로나 이후 경제적 침체와 노령 사회, 저출산, 청년 취업, 여러 사회적 분위기가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시절이다. 살아가는 삶보다 견뎌내는 시절이라고 한다. 연말이라 이래저래 사람들이 모이면 사는 것이 재미없다는 이야기가 대부분 오간다. 하지만 무언가 흥미로운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조금 다르다. 특별히 돈을 벌거나 생계와 관련이 없는 분야의 문화 활동이 좋은 처방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시각으로 창작이라는 것을 하면 대중에게 발표하는 방법 또한 너무도 다양해졌다. 평범한 내가 과연 창작을? 예술을? 다가가기 쉽지 않다지만 이런 시대에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나는 요즘 그 기준을 진정성에 둔다. 아무리 서툴고 투박하다 해도 그 창작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일관성, 지치지 않는 지속성이 있다면 전공이나 재능에 의지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시절이다. 무엇이든 십 년을 하면 누구나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고 하지 않나.

네 명의 여행자는 일상 속의 예술을 선택했다. 남에게 위안을 주는 예술보다 자신의 온전한 치유로 시작되는 예술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전시회장에는 그들의 단체 사진 한 장이 크게 걸려있다. 반백 년을 훌쩍 넘긴 중년들의 표정이 저토록 해맑을까. 그들은 내년에 짧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실크로드의 첫 여정을 함께 시작한다고 한다. 길이 없는 길이 나고 문명이 오가며 지금에 이른 그 기나긴 실크로드를.

“겨우 8박 9일요?” 하고 물었더니 신화마을에서 십 년 동안 그들을 이끈 수장 박태진 작가가 대답한다. “일단 그 시작점에서 출발을 해보는 것이지요, 그 뒤는 어떻게 될지 나도 몰라요” 몇 년이 흐른 후 네 명의 작가 단체전 ‘실크로드’에서 나는 다시 오프닝 사회를 보고 있을 것만 같다.

최영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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