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의 천지
북파의 천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3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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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파에서 내려온 다음 날 북파로 가기 위해 새벽부터 바삐 움직였다. 북파는 관광객이 가장 많이 붐비는 곳이다. 봉고차에서 내려 5분이면 바로 천지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다 편하게 올 수 있는 코스다. 산허리의 꼬불꼬불한 길을 흰 봉고차가 끝없이 오르내렸다. 멀리 천문봉 꼭대기는 눈이 허옇게 와 있었다.

봉고차에서 내리니 사람이 많아서 줄지어 걸어갔다. 휴식할 수 있는 테이블도 있고, 관리하는 직원들의 수도 많았다. 코스가 두 개 있지만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다 둘러보고 내려와도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눈이 보이지만 패딩이 무색하게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였다. 걸으니까 약간 더울 정도였다. 날씨 운은 타고났다는 말을 또다시 듣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천지는 송화강, 두만강, 압록강 세 강의 원천인데 송화강의 기원이고 세계에서 가장 깊고 해발이 가장 높은 화산구호로 2000년 세계 기네스에 올렸다고 적혀 있었다. 천지의 전망은 서파에 비해 풍경이 암벽에 가려져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그 바위들은 역사와 시간을 품고 있었다. 성스러운 산에 내가 와 있는 자체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전날 서파에서 천지를 실컷 봐서 벅찬 감동은 없어도 다른 느낌으로 나를 흥분하게 했다. 마치 내가 천지를 배경으로 한 사진에 들어가는 듯했다. 잔물결조차 보이지 않지만, 블루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틀 동안 천지를 마음껏 보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여섯 번을 와도 천지를 못 봤다고 하는 이생진 시인의 시 ‘그럴 줄 알았다’를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나라고 네 얼굴 보고 가랴 하겠냐만

네 얼굴 보고픈 그리움

장백송 가지에 새소리로 두고 간다.//

요다음에 또다시 네 앞에 선들 네 얼굴 보여주겠느냐?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북경, 장춘, 연길로 돌아온 것이 네 비위에 거슬렸다면

요다음엔 개성, 청진, 원산으로 돌아가마//

그때 가서 네 고운 얼굴, 고운 몸매,

얼싸안고 저 언덕을 뛰어넘으리라.

아니면, 네 혼자 외로운 날

고운 새 한 마리 네 몸매 스치거든

그대 님이라고 반겨,

그대 님이라고 꽃처럼 반겨주어라.

내려가는 길에 우리나라에서는 승천하는 용처럼 생겼다고 비룡폭포라 하고 중국에서는 장백폭포라 하는 폭포를 봤다. 신기하게도 이 폭포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전에는 폭포 근처까지 걸어갔다는데 시간이 갈수록 뭔가 자꾸 바뀐다. 여기저기 역한 냄새와 김이 나고 물이 끓는 노천 유황온천이 군데군데 있었다. 유명한 온천물에 익힌 달걀은 흰자는 부드러운 수프 같고 노른자는 익어 껍질 까기가 어려웠다.

2시간 정도 걸려 연길로 이동했다. 예정에 없던 북한 식당에 가기로 했다. 안내했던 미모의 여자 종업원들이 무대복으로 갈아입고는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표정과 행동이 신나 보이는 아가씨도 있었지만 정말 무표정하게 로봇처럼 연주하는 아가씨도 있었다. 팁은 받지 않고 꽃다발만 받았고 거기서 팔았다. ‘고향의 봄’을 같이 합창할 때는 가슴이 뭉클하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음식은 잡채와 돼지고기, 두루치기 등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맛이 없는지 다들 별로 먹지 않았다. 김치와 감자전은 잘 먹었으나 산천어회는 나만 잘 먹었다. 식감도 좋고 대동강 맥주와 같이 먹으니 참 맛있었다. 언젠가는 중국을 통하지 않고 북한에 있는 동파를 거쳐 천지에 바로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어본다. 그러나 요즘 뉴스를 보면 요원한 것 같긴 하다.

김윤경 작가·여행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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