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 ‘올해의 사자성어’
[단소리 쓴소리] ‘올해의 사자성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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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은근히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교수신문이 세밑 즈음해서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네 글자의 조합에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기지가 번뜩이는 탓이 크다. 그런 기대주가 베일을 벗으면 호사가들은 으레 한마디라도 거들고 싶어 안달이다. “와, 진짜 기똥차네.” “그런 명구(名句), 누가 어디서 다 볽아내나.” “글쎄. 나도 한 수 배워야겠어.”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선보인 것은 지난 10일. 교수신문은 이날 전국 대학교수들이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의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꼽았다고 밝혔다. 이 글귀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중어중문학과)는 그 의미를 이렇게 부여한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 출세와 권력이라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편에 이로운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한 경우로 의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의 이 촌평(寸評)은 살기등등한 한국의 정치판을 현장 생중계하듯 실감 나게 전해준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바둑 격언에서 보듯, 선당후사(先黨後私)고 나발이고 간에 내가 먼저 살아남아야 남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가.

각설하고, ‘올해의 사자성어’가 어떻게 뽑히는지 한번 들여다보자. 교수신문 설문조사는 대학교수만 응할 수 있다. 대학교수들은 교수신문이 골라준 사자성어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다. 내친김에 ‘올해의 사자성어’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도 한번 들어보자.

“2001년부터 연말 기획으로 교수신문에서 공표하는,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 해당 연도에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교수신문 필진, 주요 일간지 칼럼 필진, 주요 학회장, 전국대학 교수(협의)회장 등 전국 대학교수들을 상대로 교수신문이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사자성어를 해당 연도 12월에 발표한다.”

올해 교수신문의 설문조사 대상은 전국 대학교수 1천315명이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30.1%(396표)가 선택한 ‘견리망의’가 영예의 수석(首席) 자리를 꿰찼다. 2위는 25.5%(335표)를 얻은 ‘적반하장(賊反荷杖=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이, 3위는 24.6%(323표)를 얻은 ‘남우충수(濫充數)’가 차지했다.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들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는 뜻의 ‘남우충수’는 실력도 없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빗대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1, 2, 3위 모두 우리네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긍정 평가’가 아닌 ‘부정 평가’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실 ‘올해의 사자성어’는 부정 평가의 느낌이 더 짙다. 한동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급 사자성어가 뽑히기도 했으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부정 평가 성향에 대해 나무위키는 이런 견해를 밝힌다. “물론,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이들이 지식인 계층인 교수들이어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연초의 희망(希望)이 연말에는 절망(絶望)으로 바뀌기 때문일 것이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견리망의’를 선택한 교수들은 대통령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공직자의 개인 투자나 자녀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사회 지도층 인사일수록 더 바짝 긴장해서 귀담아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가는 계묘년(癸卯年) 세밑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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