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파수꾼] 환경은 서서히, 안전은 불시에
[안전파수꾼] 환경은 서서히, 안전은 불시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2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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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 가면 의외로 일회용품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반환된 찻잔을 씻어서 재사용하는 공유용품을 기피하는 배경에는 위생에 대한 개인적인 선호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매장 안에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코로나 시기에 익숙해진 일회용품 사용이 습관화되어 쉬 바뀌지 않고 있다. 점심식사 후 많은 사람이 커피가 담긴 일회용품을 들고 다닌다. 지구온난화를 걱정하고 실제 기후변화에 기인한다는 재난에 가까운 자연현상이 빈번한데도,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절박하게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기대만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일회용품을 만들 때, 사용 후 수거해서 재가공할 때 또는 소각 폐기할 때마다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성적인 판단은 당장 일상에서의 불편함조차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업장 회의를 참관하거나 공식적인 자문회의에 참석해 보면 각 참석자 앞에는 종이컵과 플라스틱 생수병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ESG 경영’을 내세우며 현란한 자료를 통해 사업장 전체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어떻게 감소시켰는지 그 성과를 과시하는 회의도 같은 모습이다. 총론과 각론이 서로 어긋나 있다. 아주 가끔 유리잔과 유리 물병을 준비한 회의의 발표자료는 담담하게 정리된, 때론 서투르게 보이는 구성에서도 자료를 작성하고 준비한 직원들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자연스레 회의의 방향성에 대해 서로 쉽게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다.

현장관찰을 위해 장비가 설치되고 있는 건설현장을 방문하면, 회의에 앞서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받아오는 경우가 많다. 함께 다니던 동료는 “주문할 때 머그잔에 담아올 수 없다면 괜찮다”면서 음료를 사양하곤 한다. “왜 그렇게 세상을 어렵게 사느냐?”고 타박하면, 그는 단지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편함을 즐겁게 감수할 뿐”이라고 답한다. 기후변화에 대해 자신의 일상영역에서 스스로 실천함으로써 책임 있는 행동을 한 것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할 때 난간을 잡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제대로 이행하는 이를 보기가 쉽지 않다. 계단 중간에, 에스컬레이터 구간 중간에 안전 난간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안전표지가 부착되어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장식품일 뿐이다. 한 사업장에서는 직원이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굴러 넘어져 골절상을 입게 되었다. 시각에 의존하는 안전표지가 효과적이지 않았다는 지적에, 난간을 잡으라는 음성 메시지 방송장치와 연동된 동작감지 설비를 계단 진입구마다 설치했다.

의식적인 또는 무의식적인 불안전행동이 의식적인 안전행동으로 바뀌기 위해선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사고의 본질인 직원의 안전의식을 고민하기보다는 손쉬운 설비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작업 시 개인보호구 착용도 8~90년대와 비교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안전모와 안전화는 그나마 개선되었으나 안전안경, 귀마개, 안전장갑 등 작업에 따라 필수적인 보호구들은 불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안전보다는 감독자의 시선을 의식한 형식적 착용이 많기 때문이다.

조금 큰 그릇에 개구리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의 물을 붓고, 개구리를 산 채로 넣으면 기분 좋은 듯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다. 이때부터 매우 약한 불로 서서히 물을 데워 나가면 개구리는 자신이 삶아지고 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죽는다. 무의식중에 서서히 익숙해져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우리의 행동이 친환경적이지 않을 경우, 우리 모두 언젠가는 겪게 될 미래 모습이다.

개개인이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당장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환경은 서서히 진행되지만, 안전은 갑자기 겪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일상에서 불안전한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끓는 물에 풍덩 빠지게 된다. 안전수칙은 나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행동방식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나부터 생각을 바꿔 행동함으로써 환경과 안전 분야에서 모두 행복해지기를 기대한다.

최준환 울산대 산업대학원 겸임교수· 전기안전기술사·산업안전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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