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희의 공감수필] 울산의 ‘-리단길’
[고은희의 공감수필] 울산의 ‘-리단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12.11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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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라 여러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쁜 일정을 보낸다. 휴대폰 달력을 확인해 보니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빽빽하다. 모임 장소 키워드는 중리단길, 송리단길, 신리단길 등 다양하다. 모임 장소의 행정동 이름인 ‘중앙-, 송정-, 신정-’ 앞에 ‘-리단’이라 써놓은 것은 울산에도 핫플이 많아져서 지역경제 활성화가 이뤄지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리단길’은 휴대전화가 보급되기 전 약속을 잡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앞에서 만나는 것이 보편적이었기에 눈에 띄는 동네 앞글자에 ‘-리단길’을 붙인 데서 시작됐다. 경주의 핫플은 황리단길, 서울은 경복궁 인근의 경리단길, 부산 해운대는 해리단길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서울 조카의 결혼식이 오전에 잡혀 있어서 전날 상경해서 예식장과 가까운 곳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조카의 결혼식을 빌미로 가족 여행을 기획하면서 마포구 망원동 시장을 투어하기로 했다. 시장은 소문대로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핫플로 소문난 식당 앞에는 대기자가 줄을 이었다. 시장 투어 전에 키오스크를 통해 맛집을 예약하고 주변 일대를 돌아다녔다.

시장에는 눈으로 봐도 품질이 좋아 보이는 지방 특산물을 내놓고 있어서 이것저것 구입했다. 투어 중간에 휴대폰을 열어 대기 시간을 확인했다. 1시간 동안 TV 방송에 나온 캐리커처 가게에 들렀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맛집 순서를 기다리면서 여러 가지 일을 볼 수 있었던 시장 투어가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울산에도 ‘-리단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업탑 일대를 한동안 ‘공리단길’이라고 부르면서 관광객을 모았던 적이 있었다. 그 이름을 오래 떨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동네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은 많다. 기초지자체에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여러 가지 안을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시장에서 수산물을 구입하면 40%가량의 금액이 되는 전통상품권을 받을 수 있어서 인기를 끌었다. 전통시장에서 싱싱한 물건을 사고 환급받을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나자 많은 사람이 ○○시장을 찾아갔다.

주요 전통시장을 방문해 보면 예전과 달라진 환경임을 실감한다. 방문객유치를 겨냥해 정비 작업도 방문객 위주로 해놓았다. 회의실이 마련돼 있어서 미리 신청하면 여러 명이 모여 회의를 할 수 있고, 갑작스레 비가 오면 우산을 대여해 주는 시장도 있다. 웬만하면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비를 피할 수 있기도 하다.

친구들과의 약속장소는 대형극장 앞이 단골이었다. 부산에 살 때는 부영극장이나 부산극장 앞이었고, 울산에서는 천도극장 앞이라고 하면 두루 통했다. 대형극장이 있는 곳에는 활성화된 시장이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난 뒤의 시장방문은 코스가 되었다. 시장을 둘러보면서 물건을 사고, 시장 골목에 있는 맛집을 찾아 식사하고, 근사한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이 답이었다.

휴대폰이 귀하던 시절의 최애 약속장소는 시계탑 네거리였다. 기억을 소환해서 가장 붐볐던 천도극장 일대를 ‘천리단길’, 중앙시장 일대는 ‘중리단길’, 중구 성남동 시계탑 일대는 ‘시리단길’, 신정시장 일대는 ‘신리단길’이라고 살짝 불러본다. 또 신도시 개념의 마을인 북구 송정동 일대를 ‘송리단길’, 울주군 구영리 일대를 ‘구리단길’, 태화루에서 가까운 태화시장 일대를 ‘태리단길’이라고 부른다면 너무 억지스러운 것일까.

현재 울산 하면 떠오르던 공업도시 이미지가 희미해지면서 이젠 ‘문화도시 울산’의 이미지가 진해졌다. 문화도시에 걸맞은 랜드마크를 떠올려 ‘-리단길’이라고 이름을 짓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고은희 울산수필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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